성운(成運, 1497-1579)은 중종, 명종, 선조 때의 학자다. 에 실린 졸기와 , 등에 의하면, 자는 건숙(健叔)이고 호는 대곡(大谷)이며 본관은 창녕이다. 35살에 생원이 되었으나 기묘사화에 많은 선비가 죽은 이후라 벼슬에 뜻이 없어 처가가 있는 보은 속리산 종곡(鍾谷)에 우거하며 자연의 풍광을 즐기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형인 참봉 성우(成遇)가 을사사화에 진복창의 모함으로 옥사하니 더욱 세상에 뜻이 없어, 조정에서 경명행수(經明行修)로 여러 번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이지함(李之菡), 서경덕, 조식 등 당대의 명현들과 교유하며 학문과 수양에 힘썼다. 자질이 단정하고 기상이 호일(豪逸)하였으며 성품이 순실(淳實)하고 온후하여 금옥과 같았다. 남을 가르치거나 시사(時事)를 말하지 않았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