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홍춘경의 시

김영도 2020. 8. 21. 15:08

홍춘경(洪春卿, 1497-1548)은 중종 때의 문신이다. <중종실록>과 <국조인물고>에 의하면, 자는 명중(明仲)이고 호는 석벽(石壁)이며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26살에 사마시를 거쳐 32살에 문과에 급제했다. 홍문관 저작랑으로 김안로를 비난했다가 파면되었고, 정언, 부수찬, 전적 등을 역임하며, 논의가 강직하여 강원도사로 좌천되었다. 공조정랑으로 병신년(1536) 문과중시에 장원하여 성균관 사성이 되고, 김안로가 사사된 후 보덕, 응교, 집의가 되었다. 44살에 예조참의가 되고 성절사로 중국에 다녀온 후 좌승지를 거쳐 황해도 관찰사가 되었다. 병조 이조참의가 되어 중종의 지문(誌文)을 지었고 대호군(大護軍)이 되었다. 51살에 모친상을 당해 여묘를 살다가 이듬해 병으로 죽었다. 성품이 효성스럽고 우애가 두터웠으며 조정에서 논의가 강직했고, 생활에 담연했다. 글씨는 김생체를 잘 썼다. 시조 1수가 전한다.

 

 

 주렴(珠簾)을 반만 걷고 벽해(碧海)를 굽어보니

 십리파광(十里波光)이 공장천일색(共長天一色)이로다.

 물 위에 양양백구(兩兩白鷗)는 오락가락하더라.

 

이 시조는 자연을 바라보며 호쾌하고 유연한 기상을 한문구를 섞어 표현하였다. 그가 삼십대 후반에 강원도사로 나갔던 때였거나 사십대 중반에 황해도 관찰사로 나갔을 때에 지었을 것이다. 초장에서 푸른 바다의 장쾌한 이미지를 펼쳐 보이고, 중장에서는 십리에 펼쳐 있는 물결의 빛이 하늘빛과 어울려 한 가지 푸른색이라고 하여,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서 한 구절을 뽑아서 이용하였다. 그는 문과 중시에 장원할 정도로 문장력이 우수했으므로 <고문진보(古文眞寶)>의 한 구절이야 입버릇처럼 쉽게 튀어나왔겠지만 창조적 표현이 아니란 점이 아쉽다고 하겠다. 종장은 바다 위에 쌍쌍이 노니는 갈매기를 보고 자신의 유연한 기분을 노래하고, 정답게 나는 갈매기로 44살에 아내를 잃은 후에 재취했던 개인적 기분을 부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장쾌하고 유연한 정서를 드러내어 정쟁으로 지새는 조정을 떠나서 느끼는 해방감을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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