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이색의 시

김영도 2020. 8. 25. 10:56

이색(李穡, 1328-1396)은 고려말의 삼은(三隱)으로 대표적인 문신의 한 사람이다. <고려사> 열전과 <목은집(牧隱集)> 등에 의하면,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14살에 성균시에 합격하였다. 젊어서 아버지 이곡(李穀)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그 곳 국자감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장원급제했으며 이제현의 문인이 되었다. 공민왕의 정치 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유교에 의한 삼년상 제도를 실시하고 신돈의 개혁에 협조하여 교육과 과거제도를 개선하였다. 공민왕의 신임으로 해마다 승진하여 38살에 첨서밀직사사(簽書密直司事)와 보문관 대제학이 되고 이듬해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가 되었다. 40살에 성균관 대사성이 되어 정몽주(鄭夢周)를 비롯한 경술지사(經術之士)들을 교관으로 삼아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토론하였으며 과거에도 이를 반영하였다. 이로써 성리학이 비로소 일어나게 되었다. 그 후 정당문학(政堂文學)을 거쳐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었으나 이인임 일파가 정사를 전횡했다. 58살에 검교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이 되어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자 창왕을 옹립하여 이성계 일파를 견제하려 했으나, 이성계가 세력을 잡자 장단에 유배되었다. 이후 여러 곳으로 옮겨 유배되었다가 태조 원년에 풀려났다. 한산백(韓山伯)을 봉했으나 받지 않았고, 여강(驪江)에서 노닐던 중 태조가 보냈다는 술을 마시고 죽었다. 그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국정을 쇄신하려 했으며, 유교의 중용을 숭상하고 군자를 지향하였다. 이성계와 친분이 있었으나 고려에 절의를 지켰다. 그의 시조를 보자.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함축과 상징으로 시적 향기가 높은 작품이다. 이 시를 단순히 경물에 대한 감흥을 읊은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지은이가 처했던 정치적 상황과 연결시켜 보면 한층 생동감 있는 의미가 살아날 수 있다. 초장에는 흰눈이 녹은 골짜기에 구름이 험하다는 기상 상태 내지 경물을 제시하였는데, 눈 녹은 골짜기와 험한 구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중장에는 작중 화자가 찾는 매화가 어디에 피었느냐고 묻고 있다. 매화는 사군자의 하나로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꽃이다. 그런 관습적 상징이 아니라면 새로운 미래를 가리키는 창조적 상징일 수도 있다. 종장에서는 석양에 홀로 서 있어서 갈 방향을 찾기 어렵다고 하였다. 석양에 홀로 서 있다는 말은 점점 암담해지는 시점에서 홀로 고민하고 감당해야 하는 절망감의 토로이다.

이 시를 지은이의 삶에 연결시켜 음미해 보자. 초장은 시대상황의 시적 표현이다.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 갈 때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신진 정치세력들의 움직임이 심상찮다는 염려스러운 상황을 제시한 것이다. 백설은 고려의 국운을, 구름은 고려말의 풍운을 함축한다고 하겠다. 그러면 중장에서 말하는 매화는 무엇인가. 그것은 작중 화자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희망의 상관물인데 그것을 매화로 설정했다는 것이 절묘하다. 눈 녹는 철의 계절감에도 맞고 매화가 의미하는 관습적 상징도 그에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는 매화가 상징하는 바대로 고려에 대한 절의를 끝까지 지켰다. 그에게 있어 설령 새로운 미래를 가상해 보아도 두 왕조의 신하가 된다는 것은 그가 지향했던 군자의 이상에 맞지 않는다. 그의 미래가 있다고 한들 지조를 지키며 사는 길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종장에서 암담한 시절에 홀로 서 있어 어디로 갈지 모른다고 한 것은 무엇인가. 정말 어디로 갈지 몰라서 한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석양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자신의 처지를 강조한 말이고 자신의 갈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따라서 갈 곳 모른다는 말은 상황이 어지러워서 갈 길을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의미다. 덧붙이자면, 그는 군자의 덕은 중용에 있다고 보고 불교와 유교에도, 신구 세력의 갈등에도 절충적 입장을 취했는데, 종장에서 토로한 말은 어느 세력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그의 중간적 처신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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