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맹사성의 시

김영도 2020. 8. 21. 15:44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은 조선 초기의 체제와 문물을 갖추는 데 기여한 명신(名臣)이다. <세종실록>에 실린 그의 졸기와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등에 의하면, 호는 고불(古佛)이고 온양 출신이며 권근(權近)의 문인이다. 27살(우왕1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춘추관 검열이 되고 여러 번 승진하여 우헌납이 되었다. 조선 개국 후에 수원판관, 예조정랑을 거쳐 이조참의와 예문관 제학이 되었고, 그 후 대사헌으로 태종의 사위(조준의 아들)인 조대림을 국문했다가 유배되기도 했다. 예조 호조 공조 이조 판서를 두루 거치고 예문관 대제학, 의정부 찬성사(議政府贊成事)가 되었다가 68살에 우의정에 올랐고, 72살에 좌의정이 되었으며 76살에 치사했다. <태종실록>을 감수했고 <팔도지리지>를 지어 바쳤다. 사람됨이 조용하고 간편하며 청렴하여 청백리에 뽑혔다. 선비를 예절로 대하였으며 지극한 효자였다.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부드러워서 조정의 큰일을 과감하게 결단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집에 비가 새고, 고향에 다닐 때 소를 타고 소박한 차림으로 다녀 수령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일화도 있다. 퉁소를 잘 불고 음률에 밝아서 향악을 정리하였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그는 조선이 개국되자 명분론을 버리고 현실에 뛰어들었고, 왕권과 공신의 틈에서 부드럽고 간소한 성품과 행동으로 현실에 적응하여 새 체제의 이상 실현에 기여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강호(江湖)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

탁료(濁醪) 계변(溪邊)에 금린어(錦鱗魚) 안주로다.

이몸이 한가하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강호에 여름이 드니 초당(草堂)에 일이 없다.

유신(有信)한 강파(江波)는 보내느니 바람이로다.

이몸이 서늘하옴도 역군은이샷다.

 

강호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쪄 있다.

소정(小艇)에 그물 실어 흘리띄워 던져두고

이몸이 소일(消日)하옴도 역군이샷다.

 

강호에 겨울이 드니 눈 깊이 자이 남다.

삿갓 비끼 쓰고 누역으로 옷을 삼아

이몸이 춥지 아니 하옴도 역군은이샷다.

 

이 시조는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다. 네 수의 시가 계절별로 나열되었고, “강호에 봄/여름/가을/겨울이 드니…역군은이샷다.”라는 고정된 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장치로, 계절에 따라 강호의 흥취가 다양하게 바뀌지만 이 모두가 임금의 은혜로 누리는 즐거움이라는 시인의 변치 않는 마음자세를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네 수의 초장에서는 철마다 다르게 일어나는 흥취를 말했다. 봄에는 미친 흥이, 여름에는 초당의 일 없음이, 가을에는 강물 고기가 살찌는 풍요로움이, 겨울에는 한 자가 넘게 쌓인 눈이 각각 제시되었다. 네 수의 중장에서는 초장에서 제시한 흥취를 풀어내는 구체적 서술이다. 봄에는 봄날의 미친 흥을 개울가에서 금린어를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시고, 여름에는 초당에 일이 없어서 강 물결 위에 부는 바람을 쐬며, 가을에는 거룻배에 그물을 싣고 강에서 살찐 고기를 잡고, 그리고 겨울에는 삿갓 쓰고 도롱이 입고 눈길을 간다고 하였다. 네 수의 종장에서는 강호에서 지내는 흥취, 곧 봄에는 한가함, 여름에는 서늘함, 가을에는 소일함, 겨울에는 춥지 않음이라는 전원생활의 모든 즐거움이 오로지 임금님의 은혜라고 하였다. 전원의 즐거움이 임금이 내리는 은혜라는 말은 군주의 덕화(德化)를 전원 내지 자연의 혜택과 동격화한 이상적 군주정치의 염원이거나 찬양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조선초의 왕권과 신권의 갈등 또는 왕권과 공신의 틈바구니에서 왕권에 대한 충성을 지키면서, 부드럽고 간소하며 청렴하게 행동하여 자신의 입지를 마련한 그의 내면의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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