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하위지의 시

김영도 2020. 8. 21. 15:41

하위지(河緯地, 1387-1456)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다. <세종, 세조실록>과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등에 의하면, 세종 때 문과에 장원하여 집현전 교리를 지냈고 <오례의주(五禮儀註)>를 상정하는 데 참여했다. 문종 때에 수양대군을 보좌하여 <역대병요(歷代兵要)> 편찬에 참여했다. 단종 즉위 후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이고 영의정이 되자 벼슬을 버리고 경상도 선산(善山)으로 물러갔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간곡히 불러 예조참판이 되었으나 받은 녹봉은 먹지 않고 저장해 두었다. 성삼문 등과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거열형(車裂刑)을 당했다. 사람됨이 침착하고 과묵하였으며 공손하고 예에 밝았다. 시조 한 수가 전한다.

 

 객산문경(客散門扃)하고 풍미월락(風微月落)할 제

 주옹(酒甕)을 다시 열고 시구(詩句)를 흩부르니

 아마도 산인득의(山人得意)는 이뿐인가 하노라.

 

이 시는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시절에 지은 작품인 듯하다. 문을 닫아걸고 홀로 술과 시를 즐기는 야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초장에는 손님이 돌아가자 문을 닫아걸고 바람은 고요한데 달빛은 비친다고 하여 은둔하는 선비의 그윽하고 조용한 환경을 제시하였다. 비록 한시구에 토를 단 느낌이지만 한시 절구의 간결하지만 그윽한 여운이 시조에 스며들고 있기도 하다. 중장은 시인의 행동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술독을 열고 취흥에 젖어 시를 읊조리는 야인으로 돌아간 것이다. 어린 단종을 주공(周公)이 어린 성왕(成王)을 보살피듯 하겠다던 수양대군이 점차 권력을 장악하며 대신들을 죽이자, 그 무도함에 실망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현실을 잊어버리려고 한 것이다. 종장에서는 그렇게 사는 것이 현실을 떠난 산인(山人)의 득의로운 경지라고 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는 야인으로 살지 못했고 다시 벼슬길에 불려나왔으며, 단종 복위를 위해 젊은 선비들과 뜻을 같이했다가 발각되어 죽게 되었다. 이 작품은 정치적 태풍이 몰아치기 직전에 잠깐 고요하게 살려했던 시인의 심정이 투영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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