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박팽년의 시

김영도 2020. 8. 21. 15:38

박팽년(朴彭年, 1417-1456)은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세조실록>과 <추강집> 등에 의하면, 자는 인수(仁叟), 호는 취금헌(醉琴軒), 본관은 순천(順天)이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성삼문과 함께 집현전 학사로서 세종의 사랑을 받았다. 세조가 즉위하자 경회루 못에 자살하려 했으나 성삼문이 훗날을 기다리자며 말렸다. 충청도 관찰사로 나갔으나 조정에 올리는 공문에 신(臣)이라 칭하지 않았고, 다음 해 형조참판이 되어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과 단종 복위를 모의하고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을 위해 잔치하는 자리에서 별운검을 서게 될 성승과 유응부가 세조와 우익(羽翼)을 제거하기로 했으나 당일 장소가 좁아 운검을 폐지하는 바람에 그냥 결행하자는 유응부를 말려서 연기했다가 김질이 장인인 정창손에게 밀고하여 모두 붙잡히게 되었다. 그의 재능을 아낀 세조의 회유를 물리치고 사형 당하였다. 형조판서인 아버지 박중림(朴仲林)과 아우 네 사람과 아들 헌(憲)도 함께 모두 죽었다. 그는 성품이 침잠(沈潛)하고 말이 적었으며, 소학(小學)을 익혀 종일 단정히 앉아 의관을 벗지 않은 단아한 선비였다. 시와 문장에 능했고 글씨도 잘 썼다. 시조 2수가 전한다.

 

금생여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출곤강(玉出崑崗)이라 한들 뫼마다 옥이 나랴.

아무리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한들 님마다 좇으랴.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夜光明月)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변할 줄이 있으랴.

 

두 시 모두 한 임금을 섬기겠다는 주지(主旨)를 드러내었다. 앞의 작품은 <추강집>에 의하면,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후에 박팽년의 마음속에 항상 불평함이 있었다고 하였고, 일찍이 이 단가를 지었다고 했으니, 이 작품은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후에 자신의 심중을 토로한 것이라 하겠다. 뒤의 작품은 단종 복위 사건으로 체포되어 옥중에 갇혔을 때 지은 것이다. 세조가 김질을 시켜 옥중에 가서 태종의 ‘하여가’로 시험하게 하니 성삼문은 정몽주의 ‘단심가’를 부르고 박팽년과 이개는 각각 단가를 지어 답했다고 하였다.

첫 수는 ‘----이라 한들 -마다 -하랴.’라는 어법으로 고정되어 있다. 그리고 앞의 넉자는 천자문에 나오는 말과 당시의 사람들이 상식으로 알았던 규범적 관념이었다. 그는 이러한 말과 관념이라도 사례마다 따져본 다음에 행동하겠다는 지성인의 올곧은 판단을 내세우고 있다. 모름지기 신하는 임금에 충성해야 한다는 세조의 주장에 그는 나는 당신의 신하가 아니라고 거부했던 것이다. 그가 조정에 올리는 공문에 신하라는 말을 쓰지 않았음도 이런 내면을 드러낸 것이다. 초장은 금[砂金]이 여수(麗水)라는 곳에서 난다고 천자문에 있지만 여수가 아닌 개울마다 금이 날 리 없다는 말이고, 중장은 옥이 곤강에서 난다고 하지만 아무 산에서나 옥이 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니 여자는 반드시 남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규범이라 할지라도 내가 믿고 따를 수 있는 님만을 섬기겠다는 말이다. 이 말은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해야 한다고 했지만 조카의 자리를 빼앗은 임금답지 않은 임금은 섬기지 않겠다는 올곧은 지성이요, 마음속 불평지심(不平之心)의 토로다.

둘째 수는 옥중에서 자신의 본심을 밝힌 작품인데, 단종에 대한 의리를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초장에서 까마귀가 눈비를 맞아 잠깐 희게 보일 때도 있지만 결코 그 본색을 바꾸지는 않다고 하고, 중장에서 밤에 빛나는 밝은 달은 밤이라고 해도 그 빛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야광명월은 자신의 마음이요 밤은 세조가 빼앗은 조정을 말한 것이다. 그러니 종장에서 단종을 향한 충성심은 변할 수가 없다고 했던 것이다. 또한 이 말은 고려 충신 정몽주의 단심가 종장이기도 하므로 자신도 정몽주와 같이 절개를 지키다가 죽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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