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원호의 시

김영도 2020. 8. 21. 15:36

원호(元昊)는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이다. <국조인물고>에 의하면, 자는 자허(子虛)이고, 호는 무항(霧巷) 또는 관란(觀瀾)이며 본관은 원주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치고 문종 때에는 집현전 직제학이 되었다. 수양대군이 권세를 잡자 고향 원주로 퇴거하였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강 맞은편에 집을 지어 당호를 관란(觀瀾)이라 하고, 시나 책을 지으며 아침저녁으로 건너다보고 울며 지내다가 단종이 죽자 3년상을 치렀다. 세조가 호조참의를 제수했으나 끝내 불응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두문불출하다가 여생을 마쳤다.    

 

간밤에 울던 여울 슬피 울어 지내어다.

이제야 생각하니 님이 울어 보내도다.

저 물이 거슬러 흐르고자 나도 울어 녜리라.

 

이 시는 그가 영월 청령포 서쪽에 오두막을 짓고 단종의 신하로 자처하며 지내던 때에 지은 작품인 듯하다. 우는 여울물 소리는 왕방연의 시조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린 임금에 대한 슬픔의 표상화이거나 어린 임금의 슬픔으로 상징되어 있다. 초장은 아침저녁으로 어린 임금이 있는 강 건너를 쳐다보며 울었다던 그가 간밤의 여울 물소리를 듣고 상심한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중장에는 그렇게 상심한 이유를 깨우쳐서 그 물소리가 바로 임금의 울음이기 때문이라 유추하였다. 종장에서 강물이 거슬러 흘러서 자신의 마음을 임금에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랐는데, 불가능한 염원을 드러내어 그것이 얼마나 간절한 비원인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맹전, 조여, 김시습, 성담수, 남효온 등과 더불어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킨 생육신인 만큼 어린 임금에게 바치는 충성이 이러했던 것이다. 이처럼 단종을 몰아낸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은 사대부의 사회를 지향했던 조선초 지식인의 가치체계에 큰 흠집을 내었고, 사대부의 마음속에 반발심을 품게 하여, 사육신과 생육신은 충신의 표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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