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유성원의 시

김영도 2020. 8. 21. 15:34

유성원(柳誠源, ?-1456)은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세종 세조실록>과 <추강집>의 육신전에 의하면, 자는 태초(太初)이고 호는 낭간(琅玕)이며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로 세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수찬, 대교 등을 역임했다.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 등을 죽이고 정권을 잡은 수양대군의 협박에 못 이겨 공신을 녹훈하는 교서를 쓰고 집에 돌아와 통곡하였다. 세조가 즉위한 후 성균 사예가 되었으나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꾀하였다가 일이 발각되어 성삼문이 잡히자 집으로 돌아가 자결했다. 시조 1수가 전한다.

 

 

초당(草堂)에 일이 없어 거문고를 베고 누어

태평성대(太平聖代)를 꿈에나 보려 하니

문전(門前)에 수성어적(數聲漁笛)이 잠든 나를 깨와라.

 

이 시조는 단종 복위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듯하다. 태평성대를 그리워하며 전원의 한가한 생활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표현하였을 뿐, 처절한 상황을 암시하는 어떤 단서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심정은 태평스럽지 않은 것으로 보아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초장에는 한가한 분위기를 읊고 있다. 일이 없어 거문고를 베고 잠을 청해 본다고 하였다. 왜 잠을 청하는가. 그것은 중장의 표현대로 꿈에서 태평성대를 만나고자 함이다. 그렇다면 초장에서 일이 없다고 한 것은 현실에서 마음이 떠났음을 토로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종장에서는 누어서 꿈을 꾸려는 순간에 어부의 피리소리가 잠을 깨웠다고 하였다. 이 말은 고기잡이나 하면서 태평성대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겠다는 뜻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고, 강호에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을 드러낸 것이라고 하겠다. 그는 수양대군의 협박 때문에 공신록을 쓰고 그 울분으로 집에 돌아와 통곡하였고, 단종 복위를 위한 모의가 탄로되자 곧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조용히 술을 나눠 마시고 사당에 들어가 자결하였다고 한다. 이런 조용하고 내성적인 인물이었으므로 꿈으로나 태평성대를 그리다가 그마저 어렵다고 보아 강호에 은둔하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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