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성삼문의 시

김영도 2020. 8. 21. 15:34

성삼문(成三問, 1418-1456)은 조선 초기의 학자이며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세종 세조실록>과 <추강집>, <연려실기술> 등에 의하면, 자는 근보(謹甫) 또는 눌옹(訥翁)이고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21살(세종20)에 문과에 급제하고 서른 살에 문과 중시(重試)에 장원했다. 집현전 학사, 수찬 등을 거쳐 경연관으로 세종을 항상 가까이 모셨다. 정음청에서 한글 창제를 위해 당시 요동에 유배되어 있던 명나라 한림학사 황찬(黃瓚)을 13번 찾아가 음운을 질의하고 다시 명나라에 여러 번 건너가 음운을 연구한 후에 훈민정음을 반포하게 했다. 세종이 만년에 숙환으로 온천에 갈 때에도 박팽년 신숙주 최항 이개 등과 함께 배종했다.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죽이고 집현전 신하들에게 공신의 호를 내리자 모두 순번으로 축하연을 열었으나 그는 혼자 열지 않았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예방승지인 그가 옥새를 안고 통곡했으며, 이듬해 좌부승지로서 아버지 성승, 박팽년 등과 단종 복위를 모의하고 4월 명나라 사신 송별연에서 운검을 서게 될 아버지와 유응부가 세조와 한명회 권람 정인지 등을 죽이기로 했으나 운검이 폐지되어 후일로 연기했다. 모의에 가담했던 김질이 성사가 안 될 것을 두려워하여 밀고,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응부 등과 함께 체포되어 거열형(車裂刑)을 당하였다. 아버지와 세 동생, 네 아들도 살해되었다. 사람됨이 소탈하여 우스갯소리를 좋아하고 기거에 절도가 없는 듯했으나 속으로는 지조가 굳세었다. 세조의 문초에도 당당히 맞섰으며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나 얼굴색을 변치 않고 ‘나으리의 형벌이 참혹하다’고 했다. 옆에 있던 신숙주에게 세종이 왕손을 당부한 것을 잊었느냐고 꾸짖고 태연히 죽음에 나아갔다. 시조 2수가 전한다.

 

수양산(首陽山)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한(恨)하노라.

주려 죽을진들 채미(採薇)도 하는 것가.

아무리 푸새엣 것인들 긔 뉘 땅에 났더니.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蓬萊山) 제일봉(第一峰)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어 있어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

 

두 수 모두 단종 복위 모의가 있기 전에 지었던 작품인데, 심중에 품은 엄정한 지조를 드러내고 있다. 첫 수는 그가 북경 가는 길에 백이(伯夷) 숙제(叔齊)의 사당에서 지었다는 한시의 의취와 비슷하다. 그 시에는 “그 때 말머리 두드리며 그르다고 한 것은 / 대의가 당당하여 일월같이 빛났건만 / 푸나무도 주나라의 비 이슬에 자랐는데 / 부끄럽다, 그대 어찌 고사리를 먹었는고.”(當年叩馬敢言非 大義堂堂日月輝 草木亦霑周雨露 愧君猶食首陽薇)라고 하였다. 시조 첫 수의 초장은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紂)왕을 치려 할 때 백이와 숙제가 ‘제후가 왕을 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고 간하다가 무왕이 받아들이지 않자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며 살았다는 고사를 생각하여 백이숙제를 원망한다고 문제제기를 했다. 중장에서 굶어 죽을망정 왜 고사리는 깨 먹었느냐고 따진 다음, 종장에서 고사리도 결국 무왕이 지배하는 주나라 땅에서 난 것이 아니냐고 하여 그 철저하지 못함을 나무랐다. 자신은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세조가 준 녹봉을 쌓아놓고 먹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 수는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서 지은 시로 보이는데, <연려실기술>에는 “일찍이 단가를 지었다.”(嘗作短歌)라고 하고 이 시조를 소개하고 있으니 단종 복위 모의가 있기 전에 지은 작품임을 알겠다. 초장은 자신이 죽은 후에 무엇이 될 것인지 자문자답해 보는 형식의 시작이다. 중장에서는 그 답으로 금강산 꼭대기에 가지가 축축 늘어진 큰 소나무가 되리라고 하였다. 남이 오를 수 없는 신념의 절정에 서겠다는 씩씩한 기상이 드러난다. 종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온 천지에 흰눈이 쌓였을 때 홀로 푸르게 서 있겠다고 하여, 세상의 시류가 자신과 어긋나도 오직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정신을 보여준다. 그는 겉으로는 소탈하고 호방하면서 속으로는 굽히지 않고 행동하는 호걸풍의 인물이었음을 이 시조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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