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유응부의 시

김영도 2020. 8. 21. 15:37

유응부(兪應孚, ?-1456)는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죽은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세종 단종 세조실록>과 <연려실기술>, 그리고 남효온의 <추강집>에 있는 ‘육신전(六臣傳)’ 등을 보면, 본관은 기계(杞溪)이고 키가 크고 용모가 엄장(嚴壯)하며 날래고 활을 잘 쐈다. 무과에 급제하여 세종과 문종의 애중함을 입어서 첨지중추원사를 지냈고, 경원 도호부사와 의주 목사 등을 거쳐 평안도 도절제사를 지냈다. 세조가 즉위하자 동지중추원사가 되었는데, 성삼문, 박팽년 등과 단종의 복위를 꾀하여 명나라 사신 초대연에서 별운검(別雲劍)이 되어 세조를 죽이려 했으나 그 날 운검이 폐지되어 계획을 미루었다가 김질(金礩)의 배신으로 잡혀서 고문을 받고 죽었다. 효성이 뛰어났으며 청렴하였고, 세조의 모진 고문에도 태연히 굽히지 않았다. 시조 한 수가 전한다.

 

간밤에 부던 바람 눈서리 치단 말가.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다 기울어 가노매라.

하물며 못다 핀 꽃이야 일러 무삼하리오.

 

이 시는 험한 기후를 읊어서 자신이 당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한시(漢詩)의 표현 기법에는 어떤 사물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거나 서술하는 부(賦)가 있고,   다른 사물에 비유하는 비(比)가 있으며, 다른 사물을 말하여 숨겨 둔 사물에 대한 정서를 일으키게 하는 흥(興)이 있다. 이 시에서 쓴 방법은 한시에서 쓰는 흥의 기법과 비슷하다. 눈서리 치던 지난밤의 풍설을 표현하여 말 뒤에 숨겨 둔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수법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육신이 병자년(丙子年, 1456, 세조2년) 6월에 단종을 복위시키려다가 발각되어 문초를 당하고 죽었던 일이거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한 데 저항하여 순사(殉死)한 사람들과 그 상황을 상징한다고 할 것이다. 남효온이 쓴 ‘육신전’에 의하면, 유응부는 세조의 모진 고문과 문초에도 의연하였고 명나라 사신 초대연에서 결행하기를 말렸던 성삼문 등 문신을 꾸짖었으며, 달군 쇠로 배를 지졌지만 식기를 기다려 쇠를 던지며 다시 달구어 오라고 했을 만큼 꿋꿋한 기상을 보였다고 한다. 이 시조의 초장에는 풍설이 치던 지난밤을 말하고, 중장에는 온갖 풍상을 이긴 낙락장송이라도 다 기울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종장에는 ‘못다 핀 꽃’ 곧 중도에서 꺾이게 된 일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해 간밤의 모진 풍설에 의연했던 낙락장송도 넘어졌는데 못 다 핀 꽃도 당연히 꺾였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간밤의 풍설과 낙락장송, 그리고 못다 핀 꽃은 각각 무엇을 가리키는가? 여기에서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그 하나는 그 의미를 좁게 보아서 간밤의 풍설은 사육신 등을 잡아들여 문초한 사건을, 낙락장송은 자신을 포함한 노신을, 못다 핀 꽃은 젊은 문신들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 의미를 넓게 보아서 풍설은 세조가 왕위를 넘보아서 일으킨 여러 사태들을, 낙락장송은 계유정난에 희생되었던 김종서를 비롯한 늙은 재상들을, 못다 핀 꽃은 이번 거사와 거기에 관련되어 죽게 된 자신들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가 직접적인 맛은 있지만 아무래도 후자라고 봄이 온당한 해석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개의 시  (0) 2020.08.21
박팽년의 시  (0) 2020.08.21
김종서의 시  (0) 2020.08.21
원호의 시  (0) 2020.08.21
왕방연의 시  (0) 2020.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