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월산대군의 시

김영도 2020. 8. 21. 15:30

월산대군(月山大君, 1454-1488)은 이름이 정(婷)이고 성종의 형이다. <성종실록>에 실린 그의 졸기에 따르면, 자는 자미(子美)이고 호는 풍월정(風月亭)이며 덕종과 인수대비의 맏아들로 세조의 사랑을 받고 궁중에서 자랐다. 7살에 월산군(月山君)에 봉해지고 성종2년(1471)에 대군(大君)으로 봉해졌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성품이 담박하여 오직 시주(詩酒)만 좋아하였다. 시가 평담(平淡)하여 중국에까지 애송되었으며 음률(音律)도 알았다. 행실이 겸손하고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으며, 성종의 우애가 돈독하여 대우가 융숭하였다. 고양(高陽)의 북촌에 별장을 지어놓고 자연에 묻혀 일생을 마쳤다. 시조 1수가 전한다.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치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매라.

 

이 시는 그가 한강 하류 북쪽 지역인 고양의 별장에 머물면서 낚시를 즐기던, 강호의 풍류를 노래한 작품이다. 세 장에서 한결같이 ‘--매라’라는 어미를 사용하여 반복해서 담담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성품이 담박하여 왕위 계승권이 동생에게로 넘어가고 자신은 강호에서 풍월을 즐기는 생활로 만족하면서 이런 작품을 지었다. 초장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가을, 밤, 차가움 등으로 나타내고 있다. 모두 서늘하게 식어가는 느낌을 주는 말이다. 본디 타고난 성품이 욕심없이 담박하다고 했지만 스스로 현실에 대한 열정이 없었는지 주위의 바람에 따른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쨌건 그는 현실에 대한 열정이 없었고 그런 태도가 자연에 투영되어 서늘한 이미지로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해 담박함의 구체적 상관물이 가을, 밤, 차가움이다. 중장은 낚시를 드리워도 고기가 물지 않는다고 하여 소득이 없는 데 대한, 또는 본래 소득에 관심이 없었던 자신의 무심한 심경을 담담한 어조로 드러내었다. 종장은 시인의 담박한 경지가 가장 잘 표현된 부분으로, 무심한 달빛을 가득 실은 빈 배, 즉 텅 비어 있으면서도 충만한 상태,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버렸으면서도 자족한 심경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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