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김식의 시

김영도 2020. 8. 21. 15:24

김식(金湜, 1482-1520)은 중종 때의 학자이며 문신이다. <연려실기술>과 <국조인물고>에 보면, 자는 노천(老泉)이고 호는 사서(沙西)이며 본관은 청풍이다. 20살에 진사가 되었으나 과거공부에 힘쓰지 않고, 성리학을 연구하여 조광조와 교유하였다. 34살에 천거되어 광흥창 주부, 이조좌랑, 장령 등을 역임하고, 기묘년(1519) 현량과에 장원하여 부제학을 거쳐 대사성이 되었다. 조광조, 김안국 등과 함께 도학파를 이루어 제도개혁과 지치주의(至治主義)를 주장하다가 남곤, 심정 등의 훈구파가 일으킨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선산에 유배되었다. 그 후 조광조가 사사되고 형벌이 더해진다는 말을 듣고 거창으로 도망했다가 자살했다. 그는 경사(經史)를 두루 읽고 성리학에 정통하였다. 시조 3수가 전한다.

 

소선(小船)에 그물 실을 제 주준(酒樽) 행여 잊을세라.

동령(東嶺)에 달 돋았다 배 어서 띄워스라.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이백(李白) 본 듯하여라. 

 

술을 취케 먹고 거문고를 희롱하니

창전(窓前)에 섰는 학이 절로 우즑하는고야.

저희도 봉래산(蓬萊山) 학임에 자연지음(自然知音)하노라.

 

월파정(月波亭) 높은 집에 한가히 올라앉아

사면을 돌아보니 이수중분(二水中分) 앞에 있다.

아이야 삼산(三山)이 어디메니 나는 젠가 하노라.

 

3수 모두 전원에서 한가하게 생활하는 정경을 읊고 있다. 셋째 수에 월파정(月波亭)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선산에서 학문에 몰두하던 시절에 지은 작품으로 보인다. 첫 수에는 강에서 배를 타고 달구경하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강호의 풍류를 담았는데, 이러한 모습이 마치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채석강에서 술에 취하여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 했다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였다. 전설적인 이백의 모습을 끌어와서 달밤에 뱃놀이하는 강호의 흥취가 현실의 번뇌를 떠난 물외의 생활이요 풍류임을 말하고 있다.

둘째 수는 서재나 초당에 앉아 술에 취하여 거문고를 타면서 그 가락에 춤추는 학과 물아일체가 되는 경지를 읊었다. 봉래산 학과 취흥으로 거문고를 켜는 시인이 서로 지음(知音)의 관계가 되어 음악을 이해할 뿐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통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과 일체가 된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그는 진사가 된 뒤에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 연구에만 전념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광조가 천거되어 벼슬에 나가면서 그도 벼슬에 나가게 되었고 신진사류의 이상론을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훈구파와 대립하게 되고 그들이 획책한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희생되고 말았다. 이 시는 이러한 일이 있기 전에 조용히 침잠했던 학문의 세계와 자연에 동화한 경지를 담은 것이라 하겠다.

셋째 수는 선산의 풍경을 읊은 것으로 자신이 즐기는 초월적 경치를 말하고 있다. 월파정 누각에 올라앉아서 사방을 둘러보니 마치 이백(李白)의 시 ‘등금릉봉황대(登金陵鳳凰臺)’에 나오는 ‘세 산은 푸른 하늘 끝에 반쯤 걸려있고, / 두 물줄기는 백로주에서 둘로 나뉘었네. (三山半落靑天外 二水中分白鷺洲)’라는 경치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것은 선산의 실제 풍경을, 이백이 읊은 금릉의 풍경에다가 상상적으로 연결시킨 초월적 세계로 시인이 상상해본 이상향이다. 그는 학문연구로 상상했던 고대의 이상정치를 현실에서 실현해보려다가 실패하고 말았으니, 이 시에서 읊은 세계도 그가 그리워한 초월적 이상세계의 투영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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