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허자의 시

김영도 2020. 8. 21. 15:14

허자(許磁, 1496-1551)는 중종,명종 때의 문신이다. <중종,명종실록>과 <국조인물고>에 따르면, 자는 남중(南仲)이고 호는 동애(東厓)이며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김안국(金安國)의 문인이다. 21살에 진사가 되고 28살에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 응교, 전한 등을 거쳐 이조정랑이 되었으나, 39살에 김안로(金安老)가 집권하자 양근군수, 황주목사 등 외직으로 돌았다. 김안로 실각 후에 동부승지, 이조참의를 거쳐 44살에 충청도 관찰사가 되고, 형조참판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대사헌, 예조판서, 우참찬이 되었다. 명종 즉위 후에 소윤(小尹)에 가담하여 을사사화로 공신이 되어 양천군에 봉해졌으며, 좌찬성에 올랐다. 54살에 이조판서로 대윤(大尹)의 신원을 주장한 민제인(閔齊仁)의 동생을 현감에 임명하였다가 이기(李芑)의 심복인 진복창(陳復昌)의 탄핵을 받아 홍원(洪原)에 유배되었다가 죽었다. 시조 2수가 전한다.

 

 무극옹(無極翁)이 고쳐 앉아 내 말씀을 대답하되

 연비어약(鳶飛魚躍)을 아는가 모르는가.

 풍월(風月)의 자연진취(自然眞趣)를 알 이 없어 하노라.

 

 호산(湖山) 천만리(千萬里)를 앉아서 다 보과라.

 무정한 강한(江漢)도 조종우해(朝宗于海) 하거든

 하물며 대장부 제세장책(濟世長策)을 품 안에서 늙히랴.

 

첫 수는 자연 속에서 도를 즐기며 사는 모습을 읊었고, 둘째 수는 강호에 살면서도 임금을 그리워하고 조정에 서서 정책을 펴보려는 포부를 담고 있다. 그가 벼슬을 버리고 전원에 돌아간 적이 없으므로 이 시조는 아마도 김안로가 우의정이 되어 정권을 장악했을 때 외직으로 나가서 한가했던 경지를 읊은 것이라 생각된다. 첫 수의 초장에서 우주를 관장하는 신인 무극옹이 자신의 물음에 대답한다고 전제하고, 중장에서 그 말인즉 연비어약(鳶飛魚躍)을 아느냐는 것이다. 곧 자연의 이법에 따라 위와 아래, 하늘과 물속에서 솔개와 고기가 자득하여 살듯이 도를 즐기며 사는 것을 터득했느냐고 묻는다고 하였다. 종장에서 자신은 그러한 경지에 올라서 청풍명월 곧 자연의 참된 뜻을 즐기면서 사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잘 모른다고 한 것이다. 정쟁의 힘겨룸에서 밀려나 외직에서 한가함을 얻어 자연의 즐거움을 누린다고 여유를 부려 보았다.

둘째 수의 초장은 강호에 물러나 천만리의 공간을 다 조감한다고 큰소리를 쳤다. 조정에서 나와서 거리를 두고 외직에 몸담으니 자연의 정취를 즐기는 한가함은 물론이고 정국 상황도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됐다는 말이다. 중장에서 중국의 양자강과 한수(漢水)가 바다로 흘러들어 가듯이 신하는 왕을 우러른다고 하여 자신도 임금에 대한 충성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고, 종장에서 한 걸음 나아가 조정에 다시 돌아가 세상을 구할 큰 방책을 내놓겠다고 포부를 드러내었다. 이렇게 지방관으로 밀려난 자신의 심정을 위로하고 훗날의 포부를 다짐하면서 정국의 전환을 기다렸을 것이다.

'-조선시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수침의 시  (0) 2020.08.21
이언적의 시  (0) 2020.08.21
주세붕의 시  (0) 2020.08.21
안정의 시  (0) 2020.08.21
박운의 시  (0) 2020.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