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박운의 시

김영도 2020. 8. 21. 15:11

박운(朴雲, 1493-1562)은 중종,명종 때의 학자다. <국조인물고>와 <용암선생문집(龍巖先生文集)>에 의하면, 자는 택지(澤之)이고 호는 용암(龍巖)이며 본관은 밀양으로 선산 사람이다. 27살에 진사가 되어 박영(朴英)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그해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벼슬길에 나가기를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35살에 상주에 머물던 박상(朴祥)을 찾아뵈었으며, 40살에 낙동강변 용소(龍沼) 옆에 용수암(龍首庵)을 짓고 인근의 자제를 교육했다. 책을 지어  퇴계 선생에게 정정(訂正)을 구하기도 했고,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었어라.

 천리(千里) 만리(萬里) 어스름하건마는

 가다가 엎어진들 가던 길을 말리야.

 

그의 시조 네 수가 문집에 전하는데, 그 중 한 수만 뽑았다. 시골에서 학문으로 일생을 보냈던 선비의 각오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초장에서 날이 저물었다는 말은 빈번한 정쟁으로 어진 선비들이 뜻을 펴지 못하고 죽어가던 암담한 정치현실을 암시하고, 갈 길이 멀다는 것은 선비가 학문을 연마해서 세상을 바로잡아야 하는 임무를 말한다. 중장은 초장을 다시 부연한 것인데, 갈 길은 천리만리로 멀고 날은 저물어 어스름하다고 하였다. 그가 ‘중의 행실과 학문이 볼 만하면 그것을 보전하게 해야 한다’는 상소를 했다가 비난을 받았다는 기록이 <명종실록>에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좀 엉뚱하기는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조정에 건의했다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렇게 그는 재야에 있는 선비였지만 학문연구 뿐만 아니라 조정의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당시의 여러 상황이 좋지 않다고 본 것이다. 종장에서 상황이 좋지 않지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꿋꿋하게 가겠다는 각오를 드러내었다. 비록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고 어진 선비들이 고난을 당하는 때일지라도 학문연구로 올바른 길을 찾고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상소를 통해서 밝히는 것이 선비의 임무이므로 그 길을 가다가 엎어지더라도 그만 둘 수는 없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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