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안정의 시

김영도 2020. 8. 21. 15:12

안정(安挺, 1494-?)은 중종 때의 문신이고 서화가이다.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자는 정연(挺然)이고 호는 죽창(竹窓)이며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23살에 생원이 되고 기묘년(1519) 현량과에 급제하여 주서가 되었으나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투옥되자 함께 갇히기를 원하여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 검열, 전적 등을 거쳐 양성(陽城) 현감을 지냈다. 신사년(1521)에 안처겸(安處謙)이 남곤, 심정을 제거하려다가 송사련(宋祀連)의 고발로 아버지 안당(安瑭)과 함께 처형된 신사무옥에 연좌되어 길주에 유배되었다가 곤양에 이배되었다. 45살에 풀려나 전한에 임명되었다가 다시 양성현감으로 좌천된 지 얼마 안 되어 벼슬을 버렸다. 매화와 대 그림을 잘 그렸고, 거문고와 책과 화초 등으로 즐겼다. 시조 2수가 전한다.

 

 전나귀 모노라 하니 서산(西山)에 일모(日暮)로다.

 산로(山路) 험하거든 간수(澗水)나 잔잔커나

 풍편(風便)에 문견폐(聞犬吠)하니 다 왔는가 하노라.

 

 청우(靑牛)를 비끼 타고 녹수(綠水)를 흘리 건너

 천태산(天台山) 깊은 골에 불로초(不老草) 캐러가니

 만학(萬壑)에 백운(白雲)이 잦았으니 갈 길 몰라 하노라.

 

이 시들은 벼슬을 버리고 강호로 돌아간 후에 지은 작품인 듯하다. 왜냐하면 첫 수는 험난한 시절을 암시하고 두 번째 수는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심정을 읊었기 때문이다. 첫 수의 초장에서 ‘다리를 저는 나귀를 몰고서 가는데 서산에 해가 졌다.’라는 말은 처세가 능란하지 못하고, 학행을 닦아 벼슬길에 나갔다가 어려움을 겪었던 자신의 행적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현량과로 벼슬길에 나갔고 조광조를 따라 옥에 갇히려고도 했다. 그러나 학문이나 행실만으로 버틸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중장에서 산길이 험할 뿐 아니라 개울물마저 잔잔하지 않다고 하여 그가 신사무옥에 모진 고문을 당하고 유배되었던 쓰라린 기억을 거기에 함축하였다. 종장에서 바람결에 개 짖는 소리를 듣고 안도하는 모습을 그려서 험난한 벼슬길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심정을 토로하였다.

둘째 수에는 강호에 돌아가 신선처럼 노니는 정경을 그렸다. 초장에서 검은 소를 비스듬히 타고 녹음이 비친 개울물을 건너가는, 유유자적하는 전원생활을 소개하고, 중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천태산 깊은 골에서 불로초를 캐어 신선이 되고자 한다. 속세를 벗어나고자 하는 지향을 엿볼 수 있다. 종장에는 불로초를 찾느라 구름에 싸인 골짜기들을 헤매다가 길마저 잃어버린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속세를 버린 사람이 산속에서 길을 잃었으니 이는 자연과 동화된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이겠다. 이 시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거기에 동화된 경지를 읊은 것이지만, 또한 당시의 정쟁으로 험난해진 벼슬길을 반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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