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곽기수의 시

김영도 2020. 8. 19. 22:28

곽기수(郭期壽, 1549-1616)는 선조 때의 문신이다. <국조인물고>의 허목(許穆)이 지은 묘표(墓表)에 따르면, 자는 미수(眉叟)이고 호는 한벽당(寒碧堂)으로 호서 해미(海美) 사람이다. 선조 때 벼슬에 나가 예조좌랑이 되었고, 부안현감을 지냈다. 부모가 90이 넘었으므로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전원에 살았다. ‘안택지사방해(安宅誌四方解)’를 지었는데, 시골에서 편안히 지내며 뒷사람들에게 경계가 됨 직한 내용이었다.   

 

 물은 거울이 되어 창 앞에 비꼈거늘

 뫼는 병풍이 되어 하늘 밖에 어위었네.

 이 중에 벗 삼은 것은 백구(白鷗) 외에 없어라.

 

 초당(草堂)의 밝은 달이 북창(北窓)을 비꼈으니

 시내 맑은 소리 두 귀를 절로 씻네.

 소부(巢父)의 기산영수(箕山穎水)도 이렇던동 만동.

 

 희황(羲皇)이 니건 지 오래니 시절이 보암 직지 아니해.

 술이 광약(狂藥)인 줄 내 먼저 알건마는

 적은 덧 취향(醉鄕)에 들어가 태고(太古)적을 보려 하니.

 

전원에 돌아와 강호자연을 벗 삼으며 자족하게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 첫 수는 자연을 배경으로 제시하고 거기에 동화된 자신을 읊었다. 초장에는 창밖에 비스듬히 흐르는 거울 같은 물을 보이고, 중장에는 하늘 밖에 멀리 펼쳐진 병풍 같은 산들을 묘사하였다. 시각 이미지의 제시가 탁월하고 은유나 조사(措辭)도 훌륭하다. 종장에서 이러한 전원풍경 속에서 자신은 흰 갈매기를 벗 삼아 살아간다고 했다. 강호자연과 일체가 된 삶을 노래한 것이라 하겠다. 둘째 수는 시골 선비가 밤중에 밝은 달을 바라보면서 맑은 시냇물 소리를 듣는 청한(淸閑)한 경지를 읊은 것이다. 초장은 초당에서 바라보는 북창에 비낀 밝은 달을 그렸고, 중장은 귀를 씻는 맑은 시냇물 소리다. 시각 이미지와 청각 이미지의 조화다. 이러한 경지는 옛날에 요임금이 왕위를 양보하려 하자 그것을 마다한 허유와 소부가 살았다고 하는 기산영수(箕山穎水)가 이렇지 않았겠는가라고 하였다. 자신의 경지를 은근히 자부하면서 기산영수도 부럽지 않다는 어감이 ‘이렇던동 만동’이라는 애매한 말꼬리에 묻어 있다. 자연 속에서 그것을 즐기는 사람의 더없는 즐거움이 넘쳐난다고 하겠다. 마지막 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술로 잊어버리고 취흥 속에서 태곳적 평화를 찾아보려하는 또 다른 도피적 은일의 시도를 보여준다. 초장에서 중국 고대 전설상의 임금인 복희씨(伏羲氏)가 다스리던 태평한 시절은 가버린 지 오래이니 지금의 현실이야 볼 것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중장에서 그런 현실을 잊어버리려고 술을 찾는다. 비록 술이 미치게 하는 약인 줄 알지만 그 힘을 빌려 현실의 불만에서 도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종장에서 잠시나마 취흥 속에 빠져 태곳적 태평성대를 맛보겠다고 하였다.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전원에서 취흥을 즐기는 여유로움도 표현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는 동서분당의 혼미한 정국을 피하여 전원으로 돌아갔고 강호자연에서 삶의 위안을 찾아 명철보신(明哲保身)하면서 이런 작품을 남겼다.  



'-조선시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장생의 시  (0) 2020.08.19
선조의 시  (0) 2020.08.19
홍적의 시  (0) 2020.08.19
장현광의 시  (0) 2020.08.19
조존성의 시  (0) 2020.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