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이덕형의 시

김영도 2020. 8. 19. 22:23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은 선조․광해군 때의 문신이다. <선조실록>과 <광해군일기>, <연려실기술>, <국조인물고> 등에 의하면, 자는 명보(明甫)이고 호는 한음(漢陰)이며 본관은 광주(廣州)다. 어렸을 때부터 이항복과 친하여 기발한 장난을 많이 쳤다. 20살(선조13, 1580)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자, 박사, 수찬, 교리를 거쳐 28살에 이조좌랑이 되었고, 직제학, 승지, 대사간, 이조참의를 거쳐 31살에 이조판서, 대제학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나자 일본 사신과 화전(和戰)을 교섭했으나 실패하고 왕을 호종하여 정주(定州)에 이르러, 청원사로 명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여 파병토록 하였다. 대사헌, 한성부 판윤, 접반사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맞이하여 함께 다녔다. 이듬해 형조, 병조판서가 되었고, 다음해 모친상을 당하여 사직했으나 임금이 기복(起復)을 명하여 이조판서, 병조판서가 되고 훈련도감 당상을 겸했다. 37살에 공조판서, 우참찬, 우찬성을 거쳐 이듬해 우의정에 올랐고 또 좌의정이 되었다. 2년 후 판중추부사가 되었고, 41살에 4도 도체찰사가 되어 전후의 민심을 수습하고 군비를 정비했다. 이듬해 영의정이 되었고, 45살에 영중추부사가 되었다가 광해군 즉위 후에 진주사(進奏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다시 영의정이 되었다. 영창대군의 처형과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벼슬을 내놓고 양근(楊根)에 내려가 병으로 죽었다. 사람됨이 솔직하고 부드러웠으며, 이산해(李山海)의 사위였지만, 당론을 좋아하지 않았다. 임란 중에 나라를 위한 공이 많았다.

 

 달이 두렷하여 벽공(碧空)에 걸렸으니

 만고풍상(萬古風霜)에 떨어짐 즉하다마는

 지금히 취객(醉客)을 위하여 장조금준(長照金樽) 하노매라.  

 

 큰 잔에 가득 부어 취토록 먹으면서

 만고(萬古) 영웅(英雄)을 손꼽아 헤어 보니

 아마도 유영(劉伶) 이백(李白)이 내 벗인가 하노라.

 

두 작품 모두 술을 마시는 기분을 노래한 음주가(飮酒歌)라고 하겠다. 첫 수는 둥근 달이 비취는 밤에 술 마시는 정경이요, 둘째 수는 술 마시며 영웅을 헤아려 본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덕형이 술을 몹시 좋아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으며, 유영이나 이백처럼 술로 이름을 낸 사람도 아니다. 그가 술을 좋아해서 이런 시조를 지었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다른 뜻이 있어 이런 시조를 지었다면 좀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첫 수의 초장에서 달이 둥글게 솟아 푸른 하늘에 걸렸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단순히 보름 달밤을 묘사한 것이냐, 아니면 무언가를 상징한 것이냐가 문제의 핵심이다. 상징이라면 무엇을 상징했겠느냐. 그의 행적으로 보아 명나라 황제의 왕권이나 조선의 왕권을 상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높은 하늘에서 만물을 비춘다는 점에서 백성에 군림하는 왕권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중장에서 달이 만고풍상을 겪었으니 떨어짐 즉하다고 했다. 하늘의 달이라 할지라도 오랜 세월동안 많은 고생을 겪었으니 땅으로 떨어질 만하다는 것인데, 그냥 달을 칭하는 말이라면 물론 의미없는 난센스다. 달은 우주공간에서 만유인력으로 궤도를 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옛날 사람이라 하나 달이 정해진 길로 반복 운행하고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달이 왕권을 상징했을 때 비로소 중장의 의미는 살아날 수 있다. 곧, 임금왜란을 겪으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니 왕권이 기울어질까 염려스러워진다는 마음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종장에서 그런데도 지금에 이르도록 취객인 자신을 위하여 금으로 만든 술통을 길이 비춰준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왕권의 은총이 달처럼 만고에 변함없이 술 마시는 자신을 하늘에서 비춰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술을 마신다는 말이 임금의 은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뜻하는 대유라고 할 것이다. 그가 취객이 아닌데 술 마신다는 말을 이 작품과 다음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할 까닭이 없다. 이것은 차라리 왕권의 덕화로 자신의 존재가 있을 수 있다는 왕조시대 관료의 정상적인 가치관을 표현한 말이라고 해야 이치에 맞는다.

들째 수의 초장에서 큰 잔으로 술을 취하도록 마신다고 했다. 술 마시는 광경이면서 임금의 은총을 흠뻑 받는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뜻은 술을 마신다는 것이지만 속으로 감춰진 뜻은 임금의 은혜를 맘껏 받는다는 뜻이다. 그는 젊은 나이에 선조의 지우(知遇)를 입어 38살에 정승이 되었다. 그의 능력도 있었겠지만 임금의 특별한 은총이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다. 중장에서 오랜 세월 동안의 영웅들을 헤아려 본다고 하였는데, 겉으로 드러낸 뜻이 술 마신다는 것이니 당연히 옛날부터 술을 잘 마시기로 이름난 인물을 생각했다는 뜻을 겉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속뜻은 임금의 은혜를 입어서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한 영웅이 누구인가를 헤아려 봤다는 말이다. 종장에서 진(晋)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 ‘주덕송(酒德頌)’을 짓고 술을 몹시 좋아했다는 유영(劉伶)과, 당나라 시인으로 술을 몹시 좋아한 이백(李白)을 술 잘 마시는 영웅으로 들고 자신과 벗할 만하다고 하였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을 영웅으로 꼽았으니 당연히 유영과 이백을 든 것일 뿐 속뜻은 그게 아니다. 유영과 이백은 문맥의 표면에 내세운 사람의 이름일 뿐, 그가 정작 생각하는 영웅은 자신처럼 임금의 은총을 입어 국난을 극복하는 데 자신의 능력을 다하여 이름을 빛낸 사람을 뜻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겉으로 술 먹는 노래에 가탁하여 속으로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고 자신의 성취에 자부심을 느끼는 노래라고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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