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김상용의 시

김영도 2020. 8. 18. 22:57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은 선조․광해․인조 때의 문신이다. <실록>과 <연려실기술>, <국조인물고>, <선원유고(仙源遺稿)> 등을 보면, 자는 경택(景擇)이고 호는 선원(仙源)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며 이항복, 신흠 등과 교유했다. 22살(선조15, 1582)에 진사를 거쳐 30살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다. 임란 때 부모를 강화의 선원촌(仙源村)에 피난시키고, 체찰사 정철의 종사관이 되었다. 33살에 정언, 병조․이조좌랑을 거쳐 부수찬, 형조참의, 좌부승지 등을 지냈다. 40살에 우승지, 대사성, 병조참의를 거쳐 이듬해 대사간이 되어 언로 경색과 궁중 법도의 해이를 직간하기도 했다. 42살에 정주(定州)목사를 거쳐 상주목사, 안변부사 등을 지냈으며, 광해군 즉위 후에 호조참판, 도승지, 대사헌 등을 지내고 형조판서가 되었다. 폐모론이 일어나자 참여치 않고 7년간 산수간에 노닐었고, 필운산 아래 청풍계(淸風溪)에 와유각(臥遊閣)을 지었으며, 부모상을 당하였다. 인조반정 후 집권당인 서인(西人)의 한 사람으로 판돈녕부사, 병조․예조판서 등을 역임했고, 정묘호란 때는 유도대장이 되었다. 68살에 이조판서를 거쳐 72살에 우의정이 되고,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병자호란에 왕족을 시종하여 강화(江華)에 피란했으나 강화성이 함락되자 화약에 불을 질러 자살했다. 성품이 중후․근신하였으며 겸손하고 검소하였다. 산수를 좋아하고 글씨를 잘 썼다.

 

 사랑이 거짓말이 님 날 사랑 거짓말이

 꿈에 와 뵈단 말이 긔 더욱 거짓말이

 나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뵈이리. 

 

 금로(金爐)에 향진(香盡)하고 누성(漏聲)이 잔(殘)하도록

 어디 가 있어 뉘 사랑 바치다가

 월영(月影)이 상난간(上欄干)캐야 맥(脈) 받으러 왔느니.

 

 오동(梧桐)에 듣는 빗발 무심히 듣건마는

 내 시름하니 잎잎이 수성(愁聲)이로다.

 이후야 잎 넓은 나무야 심을 줄이 있으랴.

 

 이별 설움을 아나 소야란(蘇惹蘭)만 다 못하다.

 직금도(織錦圖) 귀문시(龜文詩)로 먼 데 님 오게 하니

 직녀(織女)도 그러곳 하면 오작교(烏鵲橋)인들 있으랴.

 

네 수 모두 사랑과 연관된 작품이다. 아마 임금에 대한 사랑을 남녀의 사랑에 부쳐서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가 남녀의 사랑에 빠져서 간절한 정을 진솔하게 드러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첫 수는 그리워하는 님을 꿈에나 보려 하였더니 잠마저 들지 않아 꿈에서 님을 만날 수 없으므로 꿈으로 보이겠다는 님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내용이다. 초장부터 대뜸 사랑은 거짓말이라고 쏘아붙이는 것이 심상치 않은데, 이유인즉 중장에서 꿈에 나타나 보이겠다는 말이 거짓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장에선 자신이 잠을 잘 수가 없어서 꿈을 꾸지 못하니 님을 볼 수 없다고 하였다. 결론을 초장에 앞세우고 이유를 연쇄적으로 역순 배열을 해서 마치 원망하는 여인의 심정을 캐물어보는 듯한 구조를 지녔다. 그를 사랑해 주었던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님을 그리는 여인의 심정에 비겨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수도 밤늦도록 바람피우고 돌아다니다가 돌아온 남정네에게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는 여인의 어조를 띠고 있다. 초장은 금으로 만든 향로에 향이 다 타고 물시계에 떨어지는 물소리도 다했을 시간을 말했다. 금향로니 물시계니 해서 궁궐을 암시하는 듯하다. 중장은 엉뚱한 곳에 사랑을 바친 님의 행적을 원망하는 것이고, 종장은 달 그림자가 난간에 올라온 새벽녘이 돼서야 남의 심중을 살펴보려고 온 것을 비난하는 목소리다. 배경은 궁궐이고 주인공은 궁녀인 듯하며 임금을 원망하는 앙탈이다. 궁녀가 임금을 원망하는 심정을 빌어서 시인은 임금의 사랑을 기다리고 원망하는 자신의 처지와 심중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셋째 수는 수심에 잠긴 사람의 심정을 읊은 것이다. 왜 수심에 잠겼는가. 그것은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사랑을 잃은 사람의 수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동나무에 빗발 떨어지는 소란스런 소리에서 님이 오는 소리를 연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 때문이다. 초장은 무심히 오동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어보려 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슬픔의 계기가 됨을 말하였고, 중장에서 근심 있는 자신에겐 소란스런 빗소리가 오히려 슬픔을 자극하는 소리로 들린다고 했다. 그래서 종장에서 이 다음에는 넓은잎나무를 심어 슬픔을 부추기는 짓을 하지 않겠다고 하여 자신의 님 그리는 시름이 지극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이 시도 시인의 임금 사랑하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넷째 수는 중국 전진(前秦) 때 사람 소혜(蘇蕙)가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은 고사를 빌어서 자신도 님의 사랑을 되돌리고 싶은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전진의 진주자사(秦州刺史)였던 두도(竇滔)가 아내 소혜(蘇蕙)를 두고 다른 여자를 사랑하자 소혜가 회문시(廻文詩)를 넣은 비단을 짜 보내어서 그의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초장에는 이별의 설움을 아느냐고 자신과 독자에게 묻고는 서러워하고만 있는 것은 옛날의 소야란(蕭惹蘭: 야란은 소혜의 자)이 이별의 설움을 적극적으로 해결한 고사만 못하다고 단정하였다. 중장에는 소야란이 회문시(廻文詩, 본문의 귀문시(龜文詩)는 회문시의 잘못)를 짜 넣은 비단으로 님의 마음을 돌이킨 고사를 나열했다. 종장에서는 님과 이별한 직녀도 소야란 같이 해서 견우를 만날 수 있다면 일년에 한번 만나고 헤어지는 오작교가 왜 있겠느냐고 하여 님과 이별한 여인의 간절한 소망을 표현했다. 물론 직녀는 대유이고 님을 그리는 여인의 표상이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임금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님 그리는 여인의 심정에다 부쳐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바 아이들아 내 말 들어 배워스라.

 어버이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여

 일생에 효제(孝悌)를 닦아 어진 이름 얻어라.

 

 남의 말 이르지 말고 내 몸을 살펴보아

 허물을 고치고 어진 데 옮아스라.

 내 몸에 온갖 흉 있으면 남의 말을 이르랴. 

 

 그른 일 몰라 하고 뉘우쳐 다시 마라.

 알고도 또 하면 내종내 그르리라.

 진실로 허물곳 고치면 어진 사람 되리라.

 

 일 일어 세수하고 부모께 문안(問安)하고

 좌우(左右)에 뫼셔 있어 공경(恭敬)하여 섬기오되

 여가(餘暇)에 글 배워 읽어 못 미칠 듯하여라.

 

‘훈계자손가(訓戒子孫歌)’ 9수 중 네 수를 골랐다. 9수는 차례대로 효제(孝悌), 수신(修身), 순한 행실, 말을 삼가라, 싸움하지 마라, 허물을 고쳐라, 어질게 살아라, 몹쓸 일 하지 마라, 부모공경 등 아홉 가지 주제를 내세웠다. 첫 수는 효제를 권하였다. 서수(序首)인 만큼 자손들을 불러서 자기의 훈계를 들어서 실천하라고 당부하였는데, 첫 번째로 든 것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라는 가르침이다. 둘째 수는 자신의 몸을 살펴서 허물을 고치라는 수신(修身)의 내용으로 남의 허물을 들추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고쳐서 어진 데로 나아갈 것을 권하고 있다. 셋째 수는 훈계자손가 제6수로 그른 일은 접근하지도 말고 설령 가까이 했더라도 뉘우치고 다시 하지 말라고 하여 허물을 고쳐 어진 사람이 될 것을 권하였다. 마지막 수는 ‘훈계자손가’의 제9수이기도 한데, 소학에서 가르치는 생활예절을 잘 익히고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다. 그런 후에 남은 겨를이 있으면 글을 배우되 항상 미치지 못한 듯이 열심히 하라고 하여 자손의 면학을 권하였다. 이런 시는 자손에게 교훈을 내려서 교육적인 효과를 기대한 것으로 시인의 개인적 정서나 예술성에 깊이 연관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죽음에 임하여도 욕되게 살기 보다는 충절을 세워 장렬히 자결하였던 만큼 자손에게 끼칠 교훈이나 영향을 깊이 생각했을 것이다. 

 

 어버이 자식 사이 하늘 삼긴 지친(至親)이라.

 부모곳 아니면 이 몸이 있을소냐.

 오조(烏鳥)도 반포(反哺)를 하니 부모효도(父母孝道)하여라.

     

 임금을 섬기오되 정(正)한 일로 인도하여

 국궁진췌(鞠躬盡瘁)하여 죽은 후에 말아스라.

 가다가 불합(不合)곳 하면 물러간들 어떠리.

 

 부부(夫婦)라 하온 것이 남으로 되어 있어

 여고금슬(如鼓琴瑟)하면 긔 아니 즐거우냐.

 그렇고 공경(恭敬)곳 아니면 즉동금수(卽同禽獸)하리라.

 

 형제 두 몸이나 일기(一氣)로 나눴으니

 인간도 귀한 것이 이 외(外)에 또 있는가.

 값 주고 못 얻을 것은 이뿐인가 하노라.

 

 벗을 사귀오되 처음에 삼가하여

 날도곤 나은 이로 가리어 사귀어라.

 종시(終始)히 신의(信義)를 지키어 구이경지(久而敬之) 하여라.

 

‘오륜가(五倫歌)’ 전문이다. 차례대로 부자지륜(父子之倫), 군신지륜(君臣之倫), 부부지륜(夫婦之倫), 장유지륜(長幼之倫), 붕우지륜(朋友之倫)을 읊었다고 병기(倂記)되어 있다. 즉 오륜의 내용인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을 차례대로 읊었다는 것이다. 첫 수는 나를 낳아준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로 까마귀의 반포보은(反哺報恩)을 들어 강조하였다. 둘째 수에서 임금을 바른길로 섬기되 맞지 않으면 물러가라고 하였고, 셋째 수에서 부부는 남이지만 금슬이 좋으려면 서로 공경해야 한다하고, 넷째 수에서 형제는 부모의 한 가지 기운으로 생겨났으므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한 관계라고 하였다. 마지막 수에서 친구는 나보다 나은 이를 가려서 사귀되 신의를 지키고 오래도록 공경하라고 하였다. 위에서 본 ‘훈계자손가(訓戒子孫歌)’와 같이 이 작품도 자손에게 주는 교훈을 직설적으로 서술한 것으로 문학적 함축이나 여운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러나 자손을 염려하는 그의 정성은 알 수 있다. 이 같은 마음과 그의 충절, 그리고 동생 김상헌의 척화론(斥和論)과 지조는 후세 자손들의 행동에 모범으로 작용하여 자손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여러 가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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