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구지정의 시

김영도 2019. 1. 9. 21:01

구지정(具志禎)은 숙종 때의 문신이다. <숙종실록>에 의하면, 본관은 능성(綾城)으로 원종(元宗)의 처남인 구굉(具宏)의 증손자다. 음관으로 현감을 지냈으나, 1689(숙종15)년 기사환국에, 김석주(金錫胄)와 가까웠고 정국이 바뀌자 나라를 원망하는 말을 했으며, 상을 입었는데도 행동을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배 되었다. 2년 후 민암(閔黯)이 차자를 올려 죄목이 분명치 않다며 전리(田里)에 연금하여 징계하라고 하여 유배에서 풀려났다. 1694(숙종20)년에 서용되었고, 1697(숙종23)년에 남구만이 천거하여 벼슬에 나아갔다. 1706(숙종32)년에 공주목사로 있다가 불법을 저질렀다고 어사의 지적을 받았으며, 1711(숙종37)년에 황주목사가 되자 간원에서 취소하라고 논핵했다.

 



쥐 찬 솔개들아 배부르다 자랑마라.

청강(淸江) 여윈 학이 주리다 부럴소냐.

내 몸이 한가할지언정 살쪄 무엇하리요.

 



이 시는 청빈을 내세우고 세도와 부패를 풍자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의 행적과 대비해 본다면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의 고조가 구사맹(具思孟)으로 인조의 외할아버지가 되므로 왕실의 인척이 된다. 그런 연고로 음직으로 벼슬에 나가 서인의 김석주와 가까웠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한 뒤 소론의 남구만이 추천하여 공주와 황주의 목사로 나갔으나 불법을 저질러서 어사와 간원의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가 청빈을 내세우고 세도와 부패를 풍자했다면 자기모순에 빠진다. 정권을 잡은 자들을 이렇게 비난하다가 자신의 편이 정권을 잡았을 때 불법을 저질렀다면 자신의 비난은 자기모순이 되고, 벼슬에서 물러나 이런 풍자시를 썼다면 자신의 행적은 덮어두고 남만 비난하는 것이 된다.

초장은 먹이를 챈 솔개를 불러서 배가 부르다고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우의적인 수법이다. 아마 세도를 잡고 백성을 수탈하여 제 배를 불리는 자들을 풍자한 말이겠다. 중장은 이와 대조된 학이 등장한다. 솔개나 학이나 먹이를 찾는 점은 같지만, 여기서는 맑은 강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여윈 학 같은 선비가 배를 주릴망정 불법적인 수탈로 사욕을 채우는 솔개 같은 무리를 부러워하겠느냐는 것이다. 청빈한 선비가 탐욕스런 세력가를 비난하는 말인데, 이런 말을 해놓고 자신도 불법을 저질렀다면 말이 안 된다. 종장에서는 솔개와 학으로부터 끄집어낸 결론이다. 한가한 학처럼 살지언정 남의 것을 수탈하는 솔개 같이는 되지 말자는 것이다. 뒤늦게 깨우치는 것이라고 보아도 자신의 행적과 맞지 않아서 느낌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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