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이덕함의 시

김영도 2019. 1. 9. 21:02

이덕함(李德涵)은 숙종영조 때의 충청도 선비다. <숙종영조실록>에 의하면, 숙종43(1717)에 그가 상소하여 삼학사 윤집(尹集)의 사우(祠宇)를 세우고 윤집과 홍익한(洪翼漢)의 무덤에 제사지내기를 청하니 임금이 그리하라 명했다. 영조1(1725)에 다시 상소하여 홍익한의 평택 사우에 땅을 주고 비를 세우는 일을 도와 달라 하니, 임금이 칭찬하고 그 청을 따랐다. 시조 3수가 전한다.

 



공정(公庭)에 이퇴(吏退)하고 인갑(印匣)에 이끼 꼈다.

태수(太守) 정청(政淸)하니 사송(詞訟)이 아주 없다.

두어라 청송(聽訟)이 유인(猶人)한들 무송(無訟)함만 같을까.

 



잇브면 잠을 들고 깨었으면 글을 보세.

글 보면 의리(義理) 있고 잠들면 시름 잊네.

백년을 이렇듯 하면 영욕(榮辱)이 총부운(摠浮雲)인가 하노라.

 



청창(晴窓)에 낮잠 깨어 물태(物態)를 둘러보니

화지(花枝)에 자는 새는 한가도 한저이고.

아마도 유거취미(幽居趣味)를 알 이 젠가 하노라.

 



이 시들은 평생을 시골 선비로 산 지은이의 생활과 생각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첫 수는 관청에 소송이 없어야 선정이라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고, 둘째 수는 독서하는 시골 선비의 삶을 읊은 것이며, 셋째 수는 꽃가지에 앉아 자는 새를 보고 전원에서 사는 즐거움을 말한 것이다.

첫 수의 초장은 관청에 아전들이 물러나고 나서 도장 곽을 쓸 일이 없이 이끼가 끼었다고 했다. 그만큼 관청이 한가하다는 말이다. ‘공청에 이퇴하고는 김성최가 한번 썼던 말이다. 중장에서 고을 태수의 정사가 맑아서 송사가 아예 없다고 직서했는데 이는 사실인지 희망인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상태를 제시한 것일 게다. 종장에서 송사를 듣고 해결하는 것이 당사자의 입장을 충분히 살펴서 처리한다고 한들 송사가 없는 것만 못하다고 해서, 백성의 삶에 분쟁이 나지 않도록 정사를 펴는 것이 선정이라는 생각을 말했다. 둘째 수에서 자신의 생활을 소개하고 있는데, 피곤하면 잠자고 깨어나면 책을 보는 삶이다. 책을 읽고 의리를 생각했으니, 오랑캐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거부하고 절개를 지키며 죽은 삼학사의 의리를 기리는 일에 앞장섰을 것이다. 이런 삶이라면 벼슬길의 영화와 치욕이 모두 뜬구름처럼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성현이 말하는 의로운 삶은 벼슬길에 있는 것은 아니니까. 셋째 수의 초장은 갠 날 낮잠을 깨어 맑은 정신으로 창밖의 사물을 관찰한다는 상황 제시다. 중장에서 관찰의 대상은 꽃가지에 잠든 새인데 한가한 정경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은 또한 지은이의 삶을 객관화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종장에서 자신의 전원생활은 꽃가지에 잠든 새와 같은 그윽한 정취를 지닌 삶이라고 결론지었다. 벼슬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전원에서 독서하는 지성인의 자아 인식을 밝힌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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