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이유의 시

김영도 2019. 1. 9. 21:03

이유(李渘)는 숙종 때의 문신이다. 호는 소악루(小岳樓)이고 본관은 전주이며 현감을 지냈다고 하나 생몰 연대가 자세하지 않다. <해동가요><청구영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시조 작품과 함께 전한다. “옛날에 우리 단종대왕이 영월 매죽루(梅竹樓)에 있을 적에 자규사(子規詞)를 지었는데, 비록 여항의 아녀자들도 들으면 눈물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또한 왕손인데 적막한 묘사(廟祠)를 삼가 지키면서 청령포를 지날 때면 눈물지었다. 게다가 여기서 자규의 울음을 들었음에랴. 그래서 이 노래를 지어서 슬퍼하고 이름하여 자규삼첩(子規三疊)이라 한다.”

 



불여귀(不如歸) 불여귀(不如歸) 하니 돌아감만 못 하거늘

어여쁜 우리 임금 무슨 일로 못 가신고.

지금에 매죽루(梅竹樓) 달빛이 어제런 듯 하여라.

 



어여쁜 옛 임금을 생각하고 절로 우니

하늘이 시켰거든 내 어이 울었으리.

날 없는 상천설월(霜天雪月)에는 눌로 하여 울리던가.

 



자규(子規)야 울지 마라 우리도 속절없다.

울거든 너만 울지 나는 어이 울리느냐.

아마도 네 소리 들을 제면 가슴 아파 하노라.

 



이 노래는 지은이가 단종의 장릉(莊陵)을 지키는 직책을 맡았을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앞에서 적막한 묘사를 삼가 지킨다.(叩守寂廟)”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자신도 전주 이씨의 핏줄을 받았으니 원통하게 죽은 단종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다 두견새의 울음소리를 들었으니, 촉나라 망제(望帝) 두우(杜宇)가 나라를 빼앗기고 두견새가 되어 운다는 전설을 생각하고 슬픔이 배가되었을 것이다. 이런 정서를 세 수로 표현했다.

첫 수는 귀양 온 단종의 처지를 떠올린 것이다. 매죽루에 달빛이 밝은데 왕위를 빼앗기고 귀양 온 불쌍한 어린 임금은 두견새 울음소리를 듣고 슬퍼했을 것이다. 불여귀(돌아감만 못하다)라는 울음소리는 마치 자신을 조상하는 소리처럼 들렸을 것이고, 무엇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는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울분으로 미어졌을 것이다. 이런 정황을 무심한 달빛은 더욱 사무치게 했을 것이라고, 그날이 마치 어제 일 같이 새삼스럽게 되살아난다고 했다. 지금의 정감을 당시의 정감에 동일화시키는 방법이 아주 절실하다고 하겠다. 둘째 수는 단종에 대한 자신의 감회를 토로한 것이다. 불쌍한 옛 임금을 생각하고 나도 모르게 울었는데, 그것은 내가 스스로 운 게 아니라 하늘이 시켜서 운 것이라고 했다.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민중의 공통된 슬픔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런 비극이 일어났던 엄혹한 시절에 누구로 말미암아 민중들이 울었겠느냐고 묻고 있다. 어린 임금에 대한 슬픔은 하늘이 울고 민중이 울었던 비극이라고 그는 규정한 것이다. 셋째 수는 슬픔을 유발시키는 두견새에 대한 호소다. 자규의 울음소리에 감염된 우리도 어린 임금에 대한 슬픔을 주체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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