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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인천둘레길 제12구간 성창포길(우리나라 근대문화를 만나는 길)5k(동인역~인천역)

김영도 2015. 4. 13. 09:57

1.위치

동인천역/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 1-1

인천역/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1가 3

배다리/인천 동구 금곡동

홍예문/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3가 20   

자유공원/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1가 11  

개항박물관/인천광역시 중구 중앙동1가 9-2

제물포구락부/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1가 11-1                       

 

2.교통

(갈때)부평역에서 동인천역

(올때)인천역에서 부평역

 

3.코스

동인천역~중앙시장~배다리사거리~답동성당~신포시장~홍예문~자유공원~송월장로교회~공화춘~개항박물관~제물포구락부~자유공원광장~삼국지벽화거리~인천역

 

 

4.상세설명

<인천 배다리골 우각로>

우각로를 중심으로 한 골목길의 얼개는 간단하다. 배다리길에서 창영교회까지, 큰 도로인 우각로가 이어지고 좌우로 각각 창영길 시리즈와 금곡길 시리즈가 펼쳐진다. 창영길 쪽으로는 지하철 1호선이 지나기 때문에 골목이 얕다. 꺾임길이나 갈림길, 계단 등 골목길의 풍경은 만나기는 힘들다. 부분적으로 5~10미터 정도씩 옛 골목의 흔적이 남아있다. 금곡길은 창영길 보다는 깊다. 꺾임길과 갈림길이 있고 담과 창문, 생활소품 등에서 골목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우각로와 주변의 골목길은 골목길이 재개발이라는 폭력에 어떻게 버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배다리골이 재개발과 도로 건설로 시끄러워진 2006년 이후 문화예술집단 ‘퍼포먼스 반지하’는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이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낡은 담벼락에는 벽화를 그렸고 버려진 옛 집터는 텃밭으로 가꾸었다. 학교 담벼락에는 동네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그림이 그려졌고, 공동 주차장은 ‘나무그늘 주차장’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골목길은 더 이상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들게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낡고 후미진 공간이 아닌, 기분 좋게 산책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기억 또는 추억에만 머물러 있었을 골목길이 현재진행형의 살아 숨쉬는 풍경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배다리삼거리에서 동쪽으로 난 큰 길이 송림로다. 이 길에 송림초등학교가 있는데 뒤편이 송현동이다. 인천의 대표적인 달동네다. 아직 골목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미나리길, 송림1길, 총명길, 사랑마당길, 서해로, 동화로 등이 얼기설기 얽혀 있다. 길은 골목길의 전형을 보여준다. 좁고 급하고 꺾임이 많다. 골목길을 걷는 걸음은 급박하고 긴장한다. 호흡이 짧다. 전깃줄과 지붕선이 난삽하게 얽힌 스카이라인은 보기에도 어지럽다. 우각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현재 송현동은 일부 재개발이 진행된 상태. 마을 뒤편에는 동네를 굽어보며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동네 분위기는 활기차다. 아마도 초등학교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오를 지나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골목이 시끌벅적하다. 색조 분위기도 밝은 편이다. 도시형 한옥의 붉은 벽돌과 칠이 벗겨진 푸른색 대문, 회색과 흰색의 슬레이트 담, 초록색, 파란색 등 원색의 지붕이 어울려 밝은 분위기를 낸다. 중앙동 시장이 가까워서인지 미용실, 이발소, 세탁소, 철물점 등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오래된 가게들은 좀처럼 만날 수 없다.

배다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는 아직도 배다리골의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마을 입구 공터에는 분홍색 컨테이너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다. ‘중,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라고 씌어있다. 컨테이너 벽에는 배다리골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우리는 동구를 사랑해. 산업도로 절대 안돼. 그럼~’이라고 씌어있다. “우리는 이곳이 지닌 그대로의 숨결을 잊혀진 것이 아닌 동시대에 공존하는 물질로 구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다시 발견된 지역의 노인들과 텃밭, 자연의 의미 등을 담아 2008년 구성한 지역환경미술 활동이 바로 ‘골목길에 뿌려진 씨앗 이야기’다.” 배다리골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의 말이다. ‘동시대에 공존하는 물질로 구축하는 작업’, ‘그 과정에서 다시 발견된 지역’. 전국의 수많은 골목길이 재개발, 도시재생, 재건축, 도시환경정비사업 등의 갖가지 명목으로 사라지는 지금, 다시 한번 천천히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자유공원>

응봉산 전체를 자유공원이라 부르는데 조성연대는 서울의 파고다공원(1897)보다 몇 년 앞서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인천항 개항 뒤 외국인 거류민단()에서 관리 운영하여 당시 시민들은 이를 만국공원()이라 불렀고, 그 뒤 일본의 세력이 커지면서 1914년 각국 거류지의 철폐와 함께 공원 관리권이 인천부()로 이관되자 그 때부터는 서공원(西:일본인들이 이른바 를 지어놓은 동공원이 따로 있었음)으로 불렀다.

자유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응봉산 정상에 세워진 1957년 10월 3일부터이다. 지난날 이곳에는 인천각·청광각() 등의 건조물이 들어서 있었으나 6·25전쟁 때 없어졌다. 충혼탑을 비롯하여 석정루()·연오정() 등이 있으며, 학익고인돌[]을 옮겨 보존하고 있다. 자유공원은 인천 시가지와 주위의 연산()·항만·앞바다 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시민의 휴식·위락장소이며, 미술대회·글짓기대회 같은 각종 행사도 자주 열린다.

 

5.탐방일자

2015.04.11(토)

 

6.글쓴이

김영도(010-8121-8041)

 

7.생생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