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우탁의 시

김영도 2020. 8. 25. 11:03

우탁은 고려 원종 4년(1263)에 나서 충혜왕 복위 3년(1342)에 죽었다. 호를 역동(易東)이라고 하였고, 벼슬은 성균좨주(成均祭酒)에 올랐다. <고려사> 열전 우탁 조에 보면, 등과하여 영해군(寧海郡) 사록(司錄)이 되었는데 민간에서 받드는 무속신앙의 신사(神祠)를 음사(淫祀)라고 깨뜨려서 바다에 쳐넣었다고 했으며, 유교 경전과 역사에 정통하였고 특히 역학(易學)과 점술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주학(程朱學)이 이 땅에 전래되어 이것을 능히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때에 문을 닫고 이를 연구하여 깨우친 후에 제자들에게 새로운 학문인 성리학(性理學)을 가르쳤다고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충혜왕이 난잡한 행동을 했을 때 도끼와 짚자리를 지고 대궐에 들어가 상소를 했는데, 근신(近臣)이 감히 왕에게 알리지 못하자 그를 꾸짖고 왕에게 직소(直疎)를 해서 왕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우탁은 유교 경전을 읽고 그 가치규범을 몸에 익힌 이른바 신유학파의 사대부임이 분명하다. 그는 확고한 유교적 신념으로 전래의 민간 무속신앙을 배격하고, 왕의 난잡한 행동을 비판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성리학의 이론을 열성으로 탐구하여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요컨대 우탁은 새로운 가치관인 신유학에 열성적이었고 그래서 그에 어긋난 가치나 행동에 대하여 배타적이었던, 과격하고도 굳센 성품의 인물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그의 시조를 보면 한결같이 늙음을 탄식하는 작품이어서 이런 강의(剛毅)한 면모가 나타나지 않은 게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의 시조는 세 편이 전하는데 우선 한 편을 보기로 하자.

 

 늙지 말려이고 다시 젊어 보렸더니

 청춘이 날 속이고 백발이 거의로다.

 이따금 꽃밭을 지날 제면 죄 지은 듯하여라.

 

형식적인 면은 초창기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비교적 정제되어 있다. 삼장육구(三章六句)의 4음보 운율에 충실할 뿐 아니라, 종장 첫구의 석자마저도 어김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어 구사의 측면에서도 친근한 우리말을 유려하게 사용하였다. 이 시조가 표현한 내용인즉, 초장에서 젊음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드러냈는데,-려이고 -렸더니의 어미에서 이런 간절함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중장은 언제나 젊어 있을 줄 알았던 자신을 속이고 달아나 버린 청춘에 대하여 배신감에 찬 원망이다. 그리하여 종장에 가서는 젊음의 절정인 꽃밭과 이에 대비된 자신의 초라한 늙음이 차라리 죄지은 듯 부끄럽다는 심정을 토로하였다. 왜 노숙함이 자랑이 되지 못하고 젊음의 꽃밭에 대한 죄스러움으로 나타났는가. 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젊음에다가 가치 기준을 두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청춘은 좋은 것이고 백발은 싫은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탁은 새로 들어온 신유학을 열성적으로 받아들여서 새 가치관을 세우려 했던 사람이다. 좌절이나 양보로 물러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늙어서 밀려나는 것이 굴욕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춘산(春山)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 데 없다.

 저근덧 빌어다가 불리고자 머리 위에

 귀 밑에 해 묵은 서리를 녹여 볼까 하노라.

 

이 작품에서는 우의적(寓意的) 기법으로 늙음에 저항하려는 뜻을 표현하였다. 이니 서리니 하는 것은 백발에 대한 우유(寓喩)이고, ‘춘산의 바람은 말할 것도 없이 청춘을 빗댄 말이다. 형식이 정제된 것이나 언어 구사의 매끄러움, 그리고 시의 생명이라고나 할 비유의 적절함은 이 작품이 왜 뭇사람의 입에 회자(膾炙)되는지를 잘 설명하고도 남는다. 초장에서는 백발을 녹여줄 청춘의 바람이 가버리고 없는 데 대한 아쉬움을, 중장과 종장에서는 잠깐만이라도 자신의 머리 위와 귀밑의 백발을 녹여보고 싶은 열망을 토로하였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아쉬움과 열망을 토로하였을 뿐, 내면적인 아픔으로까지 자각하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정서의 온건함 또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서를 얻었다고 할 것이다.

 

 한 손에 가시를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이 작품에는 동적인 이미지가 충만해 있다. 다가오는 백발을 막기 위해 가시와 막대를 양손에 쥐고 휘두르는데, 이러한 역동적인 심상이 눈앞에 뚜렷하게 떠오른다. 이런 동적 이미지의 부각으로 말미암아 중장에서는 운율에 약간의 파격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앞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지(主旨)는 늙음이지만, 속았다고 탄식하거나 ‘춘산의 바람을 소망해 보는 그런 소극성이 아니라 이 작품에서는 늙음을 나서서 막겠다는 적극성이 드러난다. 그러나 종장의 결론인즉, 아무리 버둥거려 보아도 자연의 이치는 어길 수 없어서 백발은 지름길로 오고 있다. 여기에 늙음을 극복해 보려한 우탁의 젊음에 대한 의지도 꺾이고, 자연의 순리를 수용하려는 허탈한 탄식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우탁의 작품 세 편이 모두 늙음을 탄식하는 이른바 탄로가(嘆老歌)이기는 하지만, 동일한 주제로 다양한 수법을 구사하여 언어구사의 세련성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또한 늙음을 탄식하는 그 이면에는 시인의 신유학에 대한 꿋꿋하고 의젓한 신념이 젊음에 대한 열망처럼 불타고 있어서 이 연작 시조들은 오히려 젊고 씩씩한 그의 정신세계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고려시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조년의 시  (0) 2020.08.25
이존오의 시  (0) 2020.08.25
이존오의 시  (0) 2020.08.25
정몽주의 시  (0) 2020.08.25
이색의 시  (0) 2020.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