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이지란의 시

김영도 2020. 8. 25. 10:53

이지란(李之蘭, 1331-1402)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창업한 여진 출신의 공신이다. <고려사>와 <태조,태종실록>을 보면, 본성은 퉁(佟), 본명은 쿠룬투란티무르(古倫豆蘭帖木兒)이고, 여진 천호(千戶) 아라부카의 아들로 고려에 귀화하여 북청에 살면서 이씨의 성과 청해(靑海)를 본관으로 하사받았다. 이성계를 따라 왜구를 무찌르는 데 공을 세우고 공양왕 때 지문하부사가 되었다. 조선을 건국하는 데 일등 공신으로 청해군(靑海君)에 봉해졌고, 경상도 절제사, 동북면 도안무사를 지냈으며, 문하시랑평장사로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웠다. 명나라를 도와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했고, 좌찬성이 되었다. 태조가 영흥에 은퇴하자 그를 시종했으며, 뒤에 전장에서 사람을 많이 죽인 것을 속죄하고자 중이 되었다. 천성이 순후하고 무재(武才)가 있었다고 한다. 그가 지은 시조 한 수가 전한다.  

 

초산(楚山)에 우는 범과 패택(沛澤)에 잠긴 용이

토운생풍(吐雲生風)하여 기세도 장할시고

진(秦)나라 외로운 사슴은 갈 곳 몰라 하노라.

 

이 시조는 고려말에 왕권교체를 둘러싸고 벌어진 험난한 정세 변화를 암유하고 있다. 중국 진(秦)나라 말기에 진시황이 죽고 여러 영웅이 일어나 천하를 차지하려고 전쟁을 벌였던 일을 읊어서 고려말의 정세가 그때와 비슷함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 초장에는 초(楚)나라 장군의 후예인 항우(項羽)와 패현(沛縣)의 사상정장(泗上亭長)에서 일어난 유방(劉邦)을 범과 용이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중장에는 이 범과 용이 구름을 뿜어내고 바람을 일으키어 서로 천하를 삼키려는 기세가 대단하다고 하여, 고려말에 새 왕조를 세우려는 이성계 일파와 고려 왕조를 부지하려는 정몽주 일파의 세력다툼이 험난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종장에는 왕권을 둘러싼 투쟁을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서 “사슴을 쫓는다”[逐鹿]라고 한 말을 이용하여 진나라의 황제자리가 누구에게로 넘어갈지 모른다고 했다. 여기에서 사슴은 왕권을 뜻하는 일종의 대유로 죽은 은유이다. 물론 이 말은 고려의 왕권이 누구에게로 갈지 모른다는 뜻이고 결국은 이씨에게로 넘어가기를 바란다는 뜻을 깔고 있다. 이렇게 이 시는 중국의 역사적 사실을 들어서 고려말의 정세를 넌지시 드러내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만한 상징과 암시적 표현을 구사하려면 한문과 역사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고려말의 풍운을 진나라 말기의 형세에 비유할 만한 표현력이 있어야 하므로 여진 출신의 무장이 이런 표현기교를 썼다는 점이 의심스럽지만 근거없이 작자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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