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황희의 칠언절구 시

김영도 2018. 3. 25. 20:38

황희선생의 칠언절구입니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당시 중국을 지배하든 명나라에  使臣의 임무를 띄고 오가는 여정에서 맛보는 타국에서의 감회를 읊은 시입니다.
새 왕조의 창업을 뒷받침하여 부국강병으로 가는 길을 열어가는 데는, 당대의 많은 이들이 역사에 그 빛나는 발자취를 남겼거니와 아마도 황희선생의 이름은 그중에서도 첫 손가락을 꼽을만한 분이다. 

이 시는 이국땅의 어느 숙소에서 만난 집주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타국의 나그네를 대하는 집주인 노인장의 태도며 그 심성에서 친근감을 느끼게 된 것이 시의 배경이라 하겠다.
남들은 나이 칠십이면 은퇴하여 노후의 인생을 즐기는 시기이지만 시인은 아직도 나이를  
잊고 나라일에 분망하여 머나먼 타국을 맴돌고 있다.
백성과 나라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시인이 망중한을 시한수로 달래는 그윽한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題 : 吉城縣(길성현에서)
 
七 旬 奉 使 三 千 里 (칠순봉사삼천리)
邈 邈 要 荒 地 盡 頭 (막막요황지진두)
賴 有 主 人 心 鄭 重 (뢰유주인심정중)
蒼 顔 白 髮 尙 風 流 (창안백발상풍류)

 
칠십나이에 사신으로 가는 길이 삼천리
멀고 먼 변방이라 땅이 다한 끝이다.
미더워라 집주인의 정중한 마음씨여,
푸른얼굴 흰머리에 풍류를 숭상하네. 

<어 휘>

吉城縣 : 중국의 옛 지명
邈邈 : 아득히 먼 모양
要荒 : 나라의 변방에 위치하나 그 가치가 중요한 곳
賴 : 미쁘다. 미덥다.
鄭重 : 은근함, 언행이 점잖아 가볍지가 않음.
蒼顔 : 창백해진 노인의 얼굴 

(지은 이)
黃喜(황희, 1363 -1452), 자는 懼夫(구부), 호는 厖村(방촌), 시호는 翼成(익성). 고려왕조 창왕 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成均館學官(성균관학관)이 되었으나,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杜門洞(두문동)에 은거함.
조선왕조를 창업한 태조로 부터의 간곡한 부름과, 당시 두문동에 함께 숨어 살든 선배들의 권고를 받아들여 다시 세상에 나와 새 왕조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조선 태조 3년에 世子右正字(세자우정자)를 시작으로 다시 벼슬길에 들어서서 나라일에 진력하여 숱한 업적을 남겼다.
젊어서는 태조 이성계와 정종, 태종의 치하에서 소신과 경륜을 펼치며, 때로는 유배생활을  
겪기도 하였으나 나이 들어서는 聖君 세종을 만나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마음껏 포부를 펼쳐 보였다.
六曹(육조)의 수장인 판서를 고루 역임하는 진기록을 남기고,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조정의 首相인 영의정(領議政)으로 무려 18년이나 재임하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다. 
당시로서는 물론 오늘날에도 보기 드물게 87세라는 고령의 나이로 벼슬길에서 물러나기  
까지 농업, 국방, 세정, 외교, 학술, 禮俗(예속) 등 폭넓은 분야에서 다양한 업적을 남긴 분이다.
공은 또한 원만한 인품과 현명한 사리 분별, 청렴한 생활로 역대 왕들로 부터는 두터운  신임을, 많은 백성들로 부터는 칭송과 존경을 받은 분으로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어른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