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고려말 南在(남재) 선생의 시

김영도 2018. 3. 25. 20:41

고려말 南在(남재) 선생의 시
후손에 의해 편집된 선생의 문집에 실려 있는 이 시는 오언율시로써, 특정한 인물에 대한 시인의 소감을 피력한 내용이 되겠습니다.
이 시는 선생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임 중 선산 금오산에 은거하여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살아가든 吉再선생에게 전한 시입니다.
산중에 은거중인 길선생에게 술과 음식을 보내고, 이에 감사하는 길재선생의 답시도 전해 내려 옵니다.
비록 서로간에 가는 길은 달랐지만 두분 사이에 오가는 시와 정은 살벌한 역사의 현장에 훈훈한 미담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셈입니다.
 
題 : 寄冶隱(야은선생에게)

掛 冠 有 高 士 (괘관유고사)
避 世 吉 先 生 (피세길선생)
寂 寞 平 時 事 (적막평시사)
流 傳 千 古 名 (유전천고명)
烏 山 入 簾 碧 (오산입렴벽)
鳳 氷 繞 階 淸 (봉빙요계청)
霜 露 春 秋 節 (상로춘추절)
悠 然 不 盡 情 (유연부진정)


벼슬을 버린 덕이 높은 한 선비,
세상을 피하여 숨은 그 이름 길선생.
평소에는 인적도 없어 쓸쓸하지만,
그 이름 오래도록 후세에 널리 전하리.
금오산에 들어 푸른산으로 발을 삼고,
봉황처럼 맑은 뜻은 댓돌을 감싸누나.
봄 이슬과 가을 서리 철따라 내리지만,
한가로이 그 정을 다 나누지 못하누나.


<어휘풀이>
掛 冠 : 벼슬을 버림
避 世 : 세상을 피하여 은거함
吉先生 : 고려조의 인물로 새 왕조가 들어서자 벼슬을 버리고 평생을 선산의 금오산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숨어 산 인물로 성은 吉(길)이름은 再(재), 호는 冶隱(야은).
寂 寞 : 쓸쓸함
烏 山 : 金烏山(경북 구미 인근에 소재)의 약칭
悠 然 : 한가한 모양, 침착하여 서둘지 않음
盡 情 : 품은 정을 다 나타내다. 

<지은이>
南在(남재, 1351 ~ 1419),
자는 敬之(경지), 호는 龜亭(구정), 시호는 忠景(충경)으로 牧隱(목은) 李穡(이색)의 문인. 고려 공민왕 20년 21세로 과거에 급제하여 우사의대부, 판전교시사, 철원부사 등의 벼슬을 지내다.
조선왕조 건국후에 대사헌, 참찬문하부사, 오도도병마사(五道都兵馬使)
등의 문무 요직을 거쳐 아우인 南誾(남은)이 정도전과 함께 몰락하자 친형이라는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나 경남 의령지방으로 내려가다.
왕의 특명으로 다시 소환되어 판중추원사, 경상도관찰사, 우의정, 대제학을 거치며 마침내 별세하기 3년 전인 태종 16년에 최고위직인 영의정에 오르다.
오래동안 벼슬길에 있으면서 불교의 폐단을 논박하여 유학의 창달에 기여하고, 명나라에 사신으로 왕래하면서 국교 개선에도 노력하였다.
또한 왕명에 의해 河崙(하륜)과 함께 “高麗史”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선생의 원래 이름은 謙(겸)이 었으나 새 왕조의 첫 임금으로 즉위한 태조는 공에게 ‘在’ 라는 이름을 내리면서 까지 공을 신임하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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