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허조(許稠) 칠언율시

김영도 2018. 3. 25. 20:31

오늘은 조선 태종과 세종조의 명신(名臣)인 허조(許稠)선생의 칠언율시를 소개합니다.


진남루(鎭南樓)라는 제목으로 지은 시의 운자를 빌려서 지은 작품입니다
내용으로 보아 지은 시기는 초가을쯤으로 짐작되며,  세종의 치세(治世)가 한창 무르익어 가든 무렵이라 나라 안은 평안하고, 민생도 안정되어 그야말로 태평성세(太平盛歲)를 구가하든 시기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가축들의 평화롭고 정겨운 모습을 통해 호시절(好時節)을 단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題 : 次鎭南樓韻(진남루라는 시의 운자를 빌려서) 
 
爲 緣 淸 景 倚 新 樓 (위연청경의신루)
縱 目 初 驚 一 葉 秋 (종목초경일엽추)
萬 戶 炊 煙 靑 靄 靄 (만호취연청애애)
四 山 佳 氣 碧 浮 浮 (사산가기벽부부)
分 符 留 守 二 千 石 (분부유수이천석)
杖 鉞 觀 風 五 十 州 (장월관풍오십주)
自 幸 此 時 當 盛 際 (자행차시당성제)
鷄 鳴 狗 吠 達 窮 陬 (계명구폐달궁추)

맑은 경치에 끌려 새 다락에 올랐더니,

바라보니 아아 벌써 잎이 지는 가을이네

집마다 밥 짓는 연기는 퍼렇게 자욱하고,

산의 아름다운 기운이 새파랗게 사방에 떠오르네

병부(兵符)를 나눈 유수는 벼슬이 2천석에,

도끼 짚고 민풍(民風)을 살피는 고을은 50이라네

어허 대견한지고 이때는 바야흐르 태평 성대, 

닭 울음 개 짖는 소리가 벽지(僻地)에도 사무치네 

 <어휘풀이>

縱 目 : 마음내키는 대로 바라봄(縱觀)
靄 靄 :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양
留 守 : 벼슬 이름, 조선시대에 개성,강화,廣州,수원,춘천 등  서울의 외곽지역을 다스리던 종2품의 벼슬
杖 鉞 : 창자루와 큰 도끼(王命의 상징)
盛 際 : 성대(盛代)
鷄鳴狗吠 : 닭 울고 개 짓는 소리, 《맹자》에 “닭의 울음, 개짖는 소리가 시정(市井)에 사무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시절이 평화로워 인구가 번성한다는 말이다.
窮 陬 : 인적이 드문 외딴 곳

  
<지은 이>
허조(許稠, 1369-1439), 자는 仲通 , 호는 敬菴, 시호는 文敬. 1390년(공양왕 2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전의시승(典儀寺丞)이 되다.
조선왕조 개창(開創)후에는 左補闕(좌보궐), 奉常寺丞(봉상시승)을 맡다. 이후 吏曹의 정랑(正郞), 집현전의 직제학과 知製敎(지제교)를 역임하고, 書狀官(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 오다.
이어서, 예조참의가 되어 학제(學制)를 다듬고, 왕실의 각종 의식(儀式)과 백성들의 장례법인 상제(喪制)를 정립하다.
이후 태종 치세하에서 평안도순찰사, 한성부윤, 경기관찰사를 지내고, 세종의 등극 후에는 예조와 이조의 판서(判書)를 지내면서 민생과 관련된  여러 제도의 확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1438년에 우의정, 이듬해 좌의정으로 승차하였으나 그 해에 71세로 별세하였다.
공은 성품이 강직하여 조정에 나아가 직언(直言)을 자주 하였고, 부모에 대한 효행이 독실(篤實)하였다고 한다.
유교적 가치관과 윤리관을 정립해야 하는 조선왕조 초기에 여러 관직을 역임하면서 예악(禮樂)과 문물(文物)제도를 세우고 다듬어 가는 일에 크게 기여한 분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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