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윤상(尹祥) 칠언절구 시

김영도 2018. 3. 25. 20:29

오늘은 윤상(尹祥)이라는 분의 칠언절구를 소개합니다.

시의 주제는 오랜 벼슬길에서 물러나는 당대의 명재상 황희(黃喜)선생을 기리는 내용입니다. 첫구와 다음 구에서 같은 글자를 겹쳐서 자신의 소회를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題 : 次 領議政黃相國乞骸詩 (차 영의정황상국걸해시) 
 
盛 業 巍 巍 冠 百 揆 (성업외외관백규)
孤 忠 耿 耿 奉 天 顏 (고충경경봉천안)
縱 然 嫌 老 歸 休 計 (종연혐노귀휴계)
其 奈 宸 衷 重 泰 山 (기나신충중태산)
 
눈부신 업적 홀로 높아 백관의 우두머리요,
빛나는 충심으로 언제나 임금을 받들었나니,
늙음이 싫어 설령 물러나 쉬고자 한다 해도,
임금의 마음에는 공의 존재 태산같이 높으리.  

 <어휘>
乞骸 : 벼슬을 사직함
百揆 : 백관의 으뜸가는 벼슬로 당시는 영의정을 일컬음
孤忠 : 외로운 충성(忠誠), 남이 따라올 수 없는 충성심
耿耿 : 빛남, 뛰어남
天顔 : 임금의 얼굴 곧 임금을 지칭
縱然 : 가령, 설령
嫌老 : 늙음을 혐오함
其奈 : 어찌하든, 어떻든
宸衷 : 임금의 마음
  
<지은 이>
윤상(尹祥, 1373-1455), 자는 實夫(실부), 호는 別洞(별동). 경북 예천의 별동리에서 출생하다. 24세(조선 태조5년)에 문과에 급제후 주로 지방에서 유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교수(敎授)의 직을 수행하다.
43세(태종 15년)에 형조와 예조의 정랑(正郞)을 거쳐 명나라에 서장관(書狀官)으로 다녀 오다.
세종 11년(57세)에 성균 사성(司成),  63세에 大司成(대사성),  65세에는 
집현전의 知製敎(지제교)를 맡아서 학문의 진흥에 노력하였다.
공의 나이 70세에 물러나기를 청하였으나 세종께서는 이를 허락지 아니하고 
72세에 예문관 제학(提學), 이듬해에는 동지중추원사의 직을 제수하였다.
공은 78세에 벼슬에서 물러 나기까지 유학의 진흥과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큰 선비로서, 향년 83세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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