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길

의주길 제5구간 임진나루길(선유삼거리~임진각, 완결편)

김영도 2015. 9. 15. 08:12

1.위치                     

선유삼거리/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선유리

임진각/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로 177 임진각

 

2.교통

(갈때)솔터마을입구 정류장 33번 버스~대화역~92번 버스로 환승~선유삼거리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올때)임진각 정류장에서 058번 버스로 문산터미널~9710번 버스로 환승후 서울역~부개역

 

3.코스

선유삼거리~화석정~임진나루터앞~장산1리 마을회관~마정3리 마을회관~임진강역~임진각   

 

 

 

 

4.상세설명 

<임진각>

문산에서 통일로인 1번 국도를 따라 내쳐 달리면 북녘땅에 닿겠지만 북쪽으로 뻗은 통일로는 임진각에서 끝이 난다. 북쪽 정면에는 임진강을 건너는 자유의 다리가 있고, 뒤편 남쪽으론 통일공원이 붙어 있는 임진각이 실향민들의 ‘임시’고향이다.

임진각은 분단이 낳은 색다른 관광명소다. 휴일이면 하루에 적어도 1만여 명, 평일에도 수천 명씩 몰려든다는 임진각의 의미는 무엇일까. 두고 온 산하, 가고 싶은 산하를 건너다보고 망원경에 매달려 둘러보면서 무언가 헛헛함을 메울 수 없어하는 이땅의 사람들. 동강난 땅덩이처럼, 허리가 잘린 땅덩이처럼 우리에게 분단은 마음놓고 숨을 쉴 수가 없는 절박함인 것이다.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임진강 하류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임진각은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불과 7㎞ 떨어져 있는 지점이다. 통일로의 최북단이며 민간인 출입 북쪽 한계선이고 남북 철도의 중단점이기도 하다. 임진각 옆에는 지금도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외치는, 그때부터 멈춰서 있는 기차가 있다.

임진각은 지상 3층, 지하 1층, 연건평 2,442㎡의 건물이다.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시설인 셈이다. 1층과 2층에는 음식점과 기념품판매점 등이 있고 3층에는 북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전시실, 옥상에는 전망대가 있다. 옥상에 올라서면 그대로 사방이 툭 트여 휘둘러보게 된다. 가깝게는 임진강과 자유의 다리 일대가 아름답게 펼쳐지고, 왼쪽의 장단을 비롯한 북쪽 산하와 들판이 아스라이 보인다. 전망대 난간에는 북쪽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유료 망원경이 설치돼 있고, 5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북한의 명소를 슬라이드처럼 비춰주는 기계가 있다.

임진각 마당에는 평화로운 강산의 풍경이 새겨진 망배단이 있다. 정초에는 연시제, 추석에는 망향제를 올리고 북쪽에 두고 온 가족·친지들을 그리며, 실향민들이 아픔을 달래는 장소다.

반세기 가까이 애오라지 통일의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자유의 다리. 임진강의 푸른 물이 하염없이 흐르는 다리 초입에는 국군이 보초를 서고, 출입증이 있는 사람만 다리를 건널 수 있다. 한국전쟁 때 파괴된 것을 휴전이 성립되자 교환포로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급히 설치된 가교이며, 당시 북쪽에 잡혀 있던 포로 중 1만 2,773명이 갖은 회유를 뿌리치고 이 다리를 건너왔다고 한다. 개성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삼각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발길을 옮겼다는데, 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비좁은 이 다리는 그때 이후 분단된 이북땅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자유의 다리를 기점으로 두껍게 가로막힌 철조망은 임진강을 지그재그로 넘나들며 서에서 북으로 무한정 뻗어 있고, 철조망 너머 자유의 다리 앞에는 부산에서 달려와 신의주를 향하던 경의선 철길이 끊긴 채 누워 있어 우리 몸의 오랜 생채기를 보는 듯하다. 이 철길이 끊기면서 남쪽의 기차역은 임진각에서 약 6㎞ 아래에 있는 문산역이 종착역이 되었다. 저 비무장지대 안에 갇혀 있는 장단역은 어찌 되었을까. 장단역엔 증기기관차 한 대가 멈춰 서 있다는데 갑작스럽게 그어진 38도선으로 발이 묶인 채 기관차는 그만 오도 가도 못 하다가 한국전쟁 때 집중포화를 맞아 만신창이가 돼 있다고 한다.

통일공원은 임진각 남쪽에 붙어 있다. 반공전시관 안에는 모형 판문점 회의장과 주변 지역도, 북한의 명소 등이 안내돼 있고, 통일공원 야외에는 임진각 지역 전적비, 미육군 제187공수전투단 기념비, 미국 트루먼 대통령 동상, 인디언 머리 형상의 기념비를 비롯해 김포국제공항 폭발사고 희생자 추모비, 통일의 탑, 충혼비에서 황진이 비까지 있다. 그 수많은 기념비들 사이로 잔디와 꽃들, 드문드문 자리잡은 수목들 사이에 벤치가 놓여 있어 다리쉼을 할 수 있다. 그 한편에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목포에서 나진까지 달리던 열차가 있다. 전시에 사용했던 비행기, 탱크도 있다.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탓도 있겠지만 통일공원은 온갖 기념물들의 전시장으로 어수선하다. 자유의 다리를 건너 북쪽 깊숙이 들어가면 판문점이 있지만 허가증이 없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51년 7월 10일 유엔군과 북한군은 개성에서 휴전회담을 시작했다. 10월 25일 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겨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사용하던 곳이다. 휴전협정에 따라 판문점은 유엔군과 북한군 쌍방이 각각 5명씩의 고급장교로 구성된 군사휴전위원회의 본부구역으로 설정,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 역사상 가장 긴 휴전을 관리하는 장소이다.

남북간의 대화, 남북적십자회담, 남북대표들의 회담장소로 이용되며, 휴전협정을 위반할 할 때마다 군사정전회담을 열고 있는 판문점은 본래 ‘널문이’[]라는 한 시골마을이었다. 이제는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장소가 되었으나 결코 자랑스러운 곳은 아니다. 판문점이 속히 역사의 기념물로 남을 때 민족의 한은 비로소 풀릴 것이다.

 

5.탐방일자 

2015.09.14(월)

 

6.글쓴이

김영도(010-8121-8041)

 

7.생생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