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주길

의주길 제2구간 고양관청길(벽제관지~용미3리)

김영도 2015. 8. 2. 18:47

1.위치                   

벽제관지/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벽제관로 34-16

용미3리/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2.교통

(갈때)솔터마을입구 정류장에서 33번 버스로 대화역~삼송역

(올때)용미3리 정류장에서 703번 버스로 구파발역입구~구파발역~종로3가역~부개역

 

3.코스

삼송역~김지남묘~덕명교비~벽제교~제1대자교~벽제천~벽제관지 


 


 

4.상세설명 

<고양향교>

1985년 9월 10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69호로 지정되었다. 향교공자와 여러 성현의 제례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세운 조선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이다.
고양향교는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 처음 지었으며, 창건 이후의 자세한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다. 향교대성전(殿)과 동무·서무, 내삼문() 등은 조선 말기의 건축수법을 나타내는데, 여러 차례 보수를 하였고, 6·25전쟁 때 불에 탄 명륜당()·전사청()·외삼문() 등은 1984년에 새로 지었다.
건물 배치는 전학후묘()의 형태를 따르고 있는데, 앞쪽에 강학 공간으로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西)가 있고,뒤쪽에는 제향 공간으로 대성전과 동무·서무, 전사청이 있다.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단청이 칠해져 있고 방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를 하던 강당인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명륜당의 좌우에 있는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이 머물며 공부를 하던 건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향교에서는 해마다 고양 유림에서 주관하여 공자를 제사 지내는 석전대제를 봉행한다.


<연산군시대 금표비>

1995년 8월 7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88호로 지정되었다. 금표비는 대자동 간촌() 마을에 있는 금천군()의 묘 입구에 자리잡고 있으며 높이 147㎝, 가로 55㎝, 두께 23㎝이다.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군(재위 1494∼1506)이 자신의 유흥지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이 석비는 금천군 이변의 묘역을 보수할 때 출토되었는데, 상단과 하단의 왼쪽 일부가 떨어져 있으며, 땅속에 오랫동안 묻혀 있어서 황토빛이 뚜렷이 남아 있다.
비 앞면에는 '금표내범입자 논기훼제서율처참( )'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 금표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왕명을 어긴 것으로 보아 처벌한다는 내용의 비문이다. 1504년(연산군 10) 고양군이 왕의 유흥지가 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다시 고양군으로 복귀되었는데,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이 금표비는 연산군 때 유흥지를 만들면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금표 구역은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파주시·양주시·포천시·양주시·광주시·구리시·김포시 등이었다. 《연산군일기()》에는 1504∼1506년에 이르는 금표의 내용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5.탐방일자 

2015.08.01(토)

 

6.글쓴이

김영도(010-8121-8041)

 

7.생생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