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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도 탐방기(강화나들길 제3구간 능묘가는길16.2k 온수공영주차장~가릉)

김영도 2014. 8. 23. 10:40

1.위치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와 양도면 능내리 일대

 

2.교통

(갈때)솔터마을입구정류장에서 60-2번 버스로 온수리 공영주차장에서 하차한다

(올때)공숙입구정류장에서 61번 버스로 온수리 공영주차장 도착후 60-2번 버스로 환승후 솔터마을입구에서 하차한다

 

3.코스

 

 

 

4.상세설명

<곤릉>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길정리 에 있는 고려 강종의 비 원덕태후 유씨(元德太后 柳氏)의 능.

사적 제371호. 지정면적 1,091㎡. 원덕태후는 1212년(강종 1) 왕비로 책봉되어 연덕궁주(延德宮主)라 하고 고종을 낳았으며 1239년(고종 26)에 별세하였다.

고려는 1232년 몽고군의 침입으로 개경에서 강화로 옮겨 1270년(원종 11)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강화에서 몽고군에 대항하였다. 원덕태후는 강화에서 별세하여 곤릉에 안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능의 봉분은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붕괴되고 석조물이 파괴되어 폐허된 것을 197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 정비하였다.

능에는 사성(莎城)은 없고 봉분 앞에 ‘高麗元德王后坤陵(고려원덕왕후곤릉)’이라 쓴 표석과 문인석(文人石)이 있다. 능 앞에 3단의 장대석단을 설치한 것은 고려시대의 능제(陵制)이다.

<석릉>

이 능은 고려 희종(1169∼1237)의 능이다.
희종은 신종의 장남으로 이름은 영, 자는 불피, 시호는 성효이다. 어머니는 정선태후 김씨이며 비는 성평왕후 왕씨이다.
희종은 1204년에 즉위하였다. 즉위의 공으로 최충헌을 문하시중·진강군 개국후에 봉하였는데 횡포가 심하자 왕은 내시 왕준명 등과 함께 이를 제거하려 하였다. 그러나 일을 실패하여 희종 7년(1211)에 폐위되었고, 강화 교동에 와 있다가 고종 24년(1237) 8월에 승하하여 이곳에 안장되었다.
이 능의 봉분은 붕괴되어 석조물은 파괴되어 없어진 채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4년 보수 정화하였다.

 

<가릉>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능내리 에 있는 고려 원종의 비 순경태후 김씨(順敬太后 金氏)의 능.

사적 제370호. 지정면적 2,498㎡. 순경태후 김씨는 약선(若先)의 딸로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1235년(고종 22) 원종이 태자에 책봉되자 태자비가 되었고, 1274년 충렬왕이 즉위하자 순경태후로 추존되었다. 고려는 1232년 몽고군의 침입으로 개경에서 강화로 옮겨 1270년(원종 11)개경으로 환도할 때까지 강화에서 몽고군에 대항하였다. 순경태후는 원종이 즉위하기 전 1244년 강화에서 별세하여 가릉에 안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능에는 사성(莎城)이 없고 봉분 앞에는 표석과 문인석(文人石)만 있으며, 능 앞에 3단의 장대석단을 설치한 것은 고려 시대의 능제(陵制)이다. 이 능은 봉분이 붕괴되고 폐허된 것을 197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 정비하였다.

<강화 능내리 석실분>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
석실의 크기가 남북 방향 270cm, 폭 195cm 규모로서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석실 내부는 화강암을 잘 다듬어 쌓았고 고분 앞 양편에는 망주석으로 추정되는 사각의 석주(石柱)가 남아 있으며, 석주의 3면에는 내용을 알 수 없는 문양이 양각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석실분은 널방[玄室]을 만들고 그 위에 흙과 돌무지·진흙·숯·재 등을 깐 뒤 흙으로 봉토를 만든 것이 일반적이며, 그 형태는 다양하다. 고려시대에는 귀족을 비롯한 지배계층의 경우는 대개 원분(圓墳) 속의 석실에 칠관(漆棺)과 화장한 재를 담은 돌널을 안치하였는데, 앞에다 석등을 만들고 비석을 세웠다.
형태와 내용으로 보아 고려시대 지배계층의 분묘로 추정된다.

 

5.탐방일자 및 시간

2014.08.22(금)  4시간 30분

 

6.글쓴이

김영도(010-8121-8041)

 

7.생생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