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익종의 시

김영도 2018. 4. 10. 17:30

익종(翼宗, 1809-1830)은 순조의 세자이다. <순조실록>에 의하면, 이름은 영()이고 자는 덕인(德寅)이며 호는 경헌(敬軒)이다. 어머니는 순원왕후 김씨로 김조순의 딸이다. 4(1812, 순조12)에 왕세자에 책봉되고, 11(1819, 순조19)에 영돈령부사 조만영(趙萬永)의 딸을 맞아 가례를 올리고 헌종을 낳았다. 19(1827, 순조27)에 대리청정(代理聽政)하여 어진 인재를 등용하고 형옥(刑獄)을 신중하게 처리하는 등 선정에 힘썼으나 대리청정 4년 만에 죽었다. 익종으로 추존되었고 시호는 효명(孝明)이다. 시조 9수가 전한다

   



금준(金樽)에 가득한 술을 옥잔(玉盞)에 받들고서

심중(心中)에 원하기를 만수무강(萬壽無疆) 하오소서.

남산(南山)이 이 뜻을 알아 사시상청(四時常靑)하시다.




어극(御極) 삼십년(三十年)에 요천(堯天)인가 순일(舜日)인가.

외외탕탕(巍巍蕩蕩) 하오심을 뉘 능히 이름할꼬.

아마도 사시(四時)로 비기시면 봄이신가 하노이다.




사순칭경(四旬稱慶) 하오실제 때 맞은 풍년이라.

양맥(兩麥)이 대등(大登)하고 백곡(百穀)이 푸르렀다.

상천(上天)이 우순풍조(雨順風調)하사 우리 경사(慶事)를 도우시다.




고울사 월하보(月下步)에 깁소매 바람이라.

꽃 앞에 섰는 태도 님의 정()을 맡겼어라.

아마도 무중최애(舞中最愛)는 춘앵전(春鶯囀)인가 하노라.




벽도화(碧桃花)를 손에 들고 백옥잔(白玉盞)에 술을 부어

우리 성모(聖母)께 비는 말씀 저 벽도화(碧桃花)와 같으소서. 삼천년(三千年)에 꽃이 피고 삼천년(三千年)에 열매 맺어 꽃도 무진(無盡) 열매도 무진 무진 무진장 춘색(春色)이라.

아마도 요지왕모(瑤池王母)의 천천수(千千壽)를 성모(聖母)께 드리고자 하노라.




  순조 2811월에 대리청정을 하던 왕세자가 다음 해로 부왕의 나이가 마흔 살이 되고 등극한지 30년이 되는 해라고 하여 진찬연(珍饌宴)을 열고자 하였고, 다음해 212일에 사흘간 잔치를 열었는데 그 때 지은 작품들이다. 앞의 세 수는 부왕에게 드리는 송축가이고, 뒤의 두 수는 모후인 순원왕후(純元王后)에게 드리는 송축가다. 첫 수는 임금에게 진찬을 올릴 때 신하들이 악장을 불렀다고 하는데 이 때 왕세자가 축수하는 잔을 올리면서 지은 노래다. 옥잔에 술을 따라 올리면서 남산이 무너지지 않고 사철 푸르듯이 부왕이 만수무강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둘째 수에는 부왕이 다스린 30년이 요순시절과 같았다고 하고, 높고 넓은 성덕을 이름 붙이기 어렵지만 사철 중 하나에 비긴다면 봄날과 같다고 하였다. 마침 잔치를 열었던 때도 음력 2월이니 봄날이다. 순조는 열한 살에 등극했으나 정순대비가 수렴청정하여 천주교도와 시파를 탄압하였고 친정 후에도 외척인 안동 김씨가 전횡과 부패를 일삼아 정치가 문란하고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는 등 민생이 어려웠다. 그러나 세자는 부왕을 위로하고 축하하기 위하여 이렇게 치세를 미화한 것이리라. 셋째 수는 부왕의 마흔 살 경축연을 연 올해는 마침 풍년이 들어서 보리와 밀이 잘 자랐고 온갖 곡식도 푸르렀다. 하늘도 비와 바람을 순조롭게 해서 나라의 경사를 축복해 준다고 했다. 넷째 수는 같은 날 모후의 진찬연에서 춘 춤을 묘사한 것이다. 달 아래에서 거니는 듯 곱게 나아가며 비단 소매로 바람을 일으키고, 꽃 앞에 서서 도는 모습이 임금의 다정함을 기다리는 듯하니 춤 중에서 가장 사랑스럽기는 춘앵전 춤이라고 했다. 마지막 수는 사설시조다. 어머니에게 축수를 비는 마음이 간절해서인지 호흡이 길어졌다. 세자가 어머니에게 술잔을 올리면서 삼천년에 한번 꽃이 피고 결실한다는 전설상의 복숭아꽃을 들고 오래도록 젊음을 지니기를 빌고 있다. 종장에서 신선세계의 서왕모(西王母)처럼 오래도록 사시라고 빌어서 자신의 효심을 드러내었다

   

조종(祖宗) 큰 기업(基業)을 일인원량(一人元良) 하오시니

구중(九重)에 심처(深處)하여 효양(孝養)을 받으시니

어즈버 주문무우(周文無憂)를 다시 본 듯하여이다.




춘당대(春塘臺) 바라보니 사시(四時)에 한 빛이라.

옥촉(玉燭)이 조광(照光)하여 수역(壽域)에 올랐는 듯

만민(萬民)이 이 때를 만나 늙을 뉘를 모르더라.




화기(和氣)는 만건곤(滿乾坤)이요 문명(文明)은 극일대(極一代).

도무지 헤아리면 우리 성주(聖主) 교화(敎化)로다.

아마도 성수무강(聖壽無疆) 하오심이 아동방복(我東方福)이신가 하노이다.




  이 작품들도 부왕 순조의 덕을 칭송하는 효자와 충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첫 수에서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왕업을 어진 임금이 이었고, 깊은 궁궐 속에서 효도 잔치를 받으시니 주나라 문왕처럼 근심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고 하였다. 둘째 수에서는 창경궁 안의 춘당대를 보라보니 네 철이 한 빛이라고 하여 성군의 치세를 상징하는 봄빛이 화창하다고 했다. 그것은 임금의 덕을 고루 입어서 태평성세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수역(壽域)은 임금의 덕화로 백성이 오래 평화스럽게 사는 땅이라는 뜻이므로 만민이 늙을 줄을 모르는 이상적인 시절이 되었다는 것이다. 축수의 말이긴 하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마지막 수도 과장된 찬양이다. 따스하고 화창한 기운은 천지에 가득 차서 뛰어나게 개화된 문명시대인데, 이 모두가 우리 임금님이 교화를 편 덕택이므로 부왕께서 오래 사시는 것이 나라의 복이라고 했다. 순조 때는 안동 김씨의 세도가 국세를 기울게 한 시대이고, 세자가 이들을 견제하고 바로잡으려다가 뜻을 펴지도 못한 채 병사하고 말았다. 이 때는 태평성대가 아니라 조선이 기울어가던 시대인데, 세자는 부왕을 위하여 이렇게 축수하고 그런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희구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효관의 시  (0) 2018.04.10
기정진의 시  (0) 2018.04.10
지덕봉의 시  (0) 2018.04.10
조황의 시  (0) 2018.04.10
안민영의 시  (0) 2018.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