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2

경기도 고양시 제8구간 고양동누리길7.1k(필리핀참전비~안장고개)

김영도 2015. 1. 15. 13:49

1.위치

필리핀참전비/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 산97-6

안장고개/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2.교통

(갈때)화정역정류장에서 85번 버스를 타고 필리핀참전비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올때)선유동입구 정류장에서 703번 버스를 타고 시청역정류장에서 하차한다

 

3.코스

필리핀참전비~성령대군사적지~최영장군묘~고양향교~메타세콰이어길~선유랑체험마을~안장고개 

 

 

 

 

4.상세설명

<최영장군묘>

1975년 9월 5일 경기도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었다. 부인 문화유씨와 합장하여 1기의 묘로 만들었다. 사각형의 2단 호석을 두른 사각형 묘로서 곡장()을 설치하였다. 묘 앞에는 좌우에 묘비와 충혼비가 있으며 상석, 혼유석, 향로석이 있고 망주석과 문석인 각 한 쌍이 좌우에 배열되어 있다. 봉분은 사각이며 위편에 최영의 부친 최원직의 묘가 있다.

최영은 1316년(충숙왕 3)에 태어나 호군, 대호군을 거쳐 후에 문하시중에 올랐다. 고려 말 공민왕우왕 때 왜구와 홍건적의 침입을 수차례 물리치고 1388년 요동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으로 좌절된 후 1388년(우왕 14) 이성계에 의해 참형되었다.

 

<성령대군 사적지>

이종은 조선 태종의 넷째 아들로서 성녕군에 봉해졌다가 1414년(태종 14)에 대군이 되었으며 대광보국대부의 위계에 올랐다. 어려서부터 태도가 의젓하고 총명하여 부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14살 때 홍역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묘는 대자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데, 장대석 3단을 쌓았으며 주위에 호석()을 둘렀다. 묘소의 좌우에는 석호와 석양이 세워져 있고 묘 앞에는 상석, 장명등을 두었으며 좌우로는 문인석을 배치하였다. 신도비는 팔작지붕 모양의 옥개석과 거북모양의 귀부를 갖추고 검은 수석으로 된 비신을 화강암 우주석에 끼워 넣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1418년(태종 18)에 세웠으며 비 전체 높이 300㎝, 비신 높이 163㎝, 폭 130㎝, 두께 25㎝의 규모이다. 비문은 변계량()이 짓고 글씨는 성개가 썼다.

 

<고양향교>

1985년 9월 10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69호로 지정되었다.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의 제례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세운 조선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이다.
고양향교는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 처음 지었으며, 창건 이후의 자세한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다. 향교의 대성전(殿)과 동무·서무, 내삼문() 등은 조선 말기의 건축수법을 나타내는데, 여러 차례 보수를 하였고, 6·25전쟁 때 불에 탄 명륜당()·전사청()·외삼문() 등은 1984년에 새로 지었다.
건물 배치는 전학후묘()의 형태를 따르고 있는데, 앞쪽에 강학 공간으로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西)가 있고,뒤쪽에는 제향 공간으로 대성전과 동무·서무, 전사청이 있다.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단청이 칠해져 있고 방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를 하던 강당인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명륜당의 좌우에 있는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이 머물며 공부를 하던 건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향교에서는 해마다 고양 유림에서 주관하여 공자를 제사 지내는 석전대제를 봉행한다.

 

5.탐방일자

2015.01.13(화)

 

6.글쓴이

김영도(010-8121-8041)

 

7.생생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