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제의 시

김영도 2020. 8. 19. 22:32

임제(林悌, 1549-1587)는 선조 때의 문인이다. <국조인물고>와 <백호집(白湖集)>, <성호사설(星湖僿說)> 등에 의하면, 자는 자순(子順)이고 호는 백호(白湖)이며 본관은 나주다. 어려서 천재였고, 22살에 속리산의 성운(成運)을 찾아가 성리학과 시를 배웠다. 28살(1576, 선조9년)에 생원․진사가 되어 다음해 알성문과에 급제하였다. 그해에 제주도로 부친을 찾아 근친하였고, 오는 길에 백광훈, 이달 등과 용성(龍城)에서 어울려 시를 지었으며, 홍문관 지제교가 되었다. 31살에 고산(高山) 찰방을 거쳐, 북도병마평사, 평안도사(平安都事)가 되어 황진이의 묘를 지나며 제사를 지냈고, 보검을 차고 준마 타기를 좋아하여 일부러 임금의 행차를 가로질러 탄핵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수성지(愁城誌,)를 지었다. 흥양현감 등을 거쳐, 예조정랑 겸 지제교를 지내다가 동서분당을 개탄하여 벼슬을 버리고 전국을 유람하였으며, 함경도에서 기생 한우(寒雨)와 평양에서 일지매(一枝梅)와 교제했다. 당시 선비들은 그를 법도에 벗어난 사람으로 보았는데 문사(文詞)는 취할 만하다고 하였다. 이이, 성혼, 허봉, 양사언, 차천로 등이 그의 기이한 기상을 알아주었다. 부친 진(晋)이 죽은 후 두 달 뒤에 죽었다. 죽을 때 자손에게 통곡을 금하고 “사해 천지에 제왕이라 칭하지 않는 곳이 없는데 홀로 우리나라만 제왕이라 칭하지 못하니 이런 비루한 나라에 났다가 죽는 것이 무엇이 그리 애석하냐?”고 했으며 평소에도 “내가 만일 오대(五代)나 육조(六朝)에 났더라면 마땅히 돌림천자는 했을 것이다.”라고 하는 등, 고고하고 초월적인 기개와 호방 쾌활한 성품을 지녔다.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었는다.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북천(北天)이 맑다커늘 우장(雨裝)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 비로다.

 오늘은 찬 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두 수 모두 기생을 제재로 지은 시지만, 첫 수는 황진이가 죽어서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읊은 것이고, 둘째 수는 한우와 만나서 희롱하는 시이다. 첫 수는 그가 평안도사가 되어 개성을 지나다가 황진이의 묘 앞에서 이 시조를 지었다고 한다. 초장은 무덤의 배경을 제시하면서 황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묻는 대목이다. 왜 사실을 묻는가. 그녀가 죽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푸른 풀이 우거진 곳에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서 유명(幽明)의 세계가 분명히 갈라져버린 황진이에게 죽었느냐고, 아니면 살아서 누워있는 것이냐고 반신반의한 심정으로 묻는다. 저승에 머물면 살아 돌아오라고 간절히 바라는 아쉬움에서 나오는 말이다. 중장에서 황진이가 결국 죽었음을 확인한다. 그리 곱던 홍안은 어디로 가버리고 앙상한 백골만 묻혀있느냐고 통탄해 하는 것이다. 종장에서 살았다면 만나서 시주(詩酒)로 즐길 텐데 잔을 권할 상대가 없으니 슬프다고 하였다. 그녀를 못 만난 아쉬움의 토로다.

둘째 수는 그가 예조정랑을 마지막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전국을 유람할 때 함경도에서 기생 찬비[寒雨]를 만났는데 그 때 지은 것이라 한다. 기생과 주고받는 농염한 희롱의 노래다. 초장은 찬비를 만나게 된 연유를 밝히는 상황설정이다. 북천은 북쪽 하늘과 함경도의 하늘이라는 두 가지 뜻을 동시에 가지는 중의법(重義法)이다. 북천이 맑아서 우장 없이 길을 나섰다는 말은 글자대로 북쪽 하늘이 개어서 우장을 챙기지 않고 나왔다는 뜻이지만, 또한 함경도에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장에서 산과 들에 눈과 비가 온다고 했는데, 기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운우(雲雨)의 풍정을 암시하기도 하며, 찬비[寒雨]라는 기생을 만난 것을 뜻하기도 한다. 종장에서 겉으로만 보면 차가운 비를 맞았으니 몸이 얼어서 잘 것이라는 말이지만, 속뜻을 헤쳐 보면 기생 찬비[寒雨]를 만났으니 남녀가 어울려 잘 것이라는 매우 농염한 풍류를 둔사(遁辭)로 말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한우(寒雨)의 답시(答詩)를 보자.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 얼어 자리

 원앙침(鴛鴦枕) 비취금(翡翠衾)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임제가 남녀의 풍정을 은근히 암시하였다면 한우는 아주 노골적으로 나왔다. ‘얼어 자다’는 말로 임제는 얼어서 잔다는 뜻과 어울려 잔다는 뜻을 함께 담았는데 비하여 한우는 아예 어울려 잔다는 뜻을 버리고 얼어 잔다는 뜻만을 취하여 좋은 금침을 두고서 무엇 때문에 얼어 자겠느냐고 한 것이다. 초장에는 어째서 얼어 자겠느냐고 두 번씩 변조 반복하여 얼어 잘 수 없음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다음 장에서 제시할 조건이 있으므로 그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장에는 그 조건의 하나로 원앙새를 수놓은 베개와 비취색의 비단 이불을 제시했다. 이렇게 좋은 금침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얼어 자느냐는 것이다. 종장에는 또 다른 조건으로 차가운 비를 맞은 것을 들었는데, 찬비를 맞았으니 몸을 녹이기 위해서라도 녹아자야지 얼어 잘 수는 없다고 했다. 또한 찬비 바로 자신을 만났으니 얼어 잘 수 없다는 말도 된다. 재미있는 응수요 농염한 수작(酬酌)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임제의 은근한 흥취를 한우는 일면적으로만 받아들여서 서둘러 해석하고 받아넘긴 성급한 정열이 앞섰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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