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남선의 시

김영도 2020. 8. 13. 22:34

남선(南銑, 1582-1654)은 인조․효종 때의 문신이다. 실록과 <국조인물고> 등에 따르면, 그의 자는 택지(澤之)이고 호는 회곡(晦谷)이며 본관은 의령이다. 25살(1606, 선조39)에 진사가 되었으나 광해군의 난정에 벼슬하기를 단념하고 용인에 우거했다. 38살에 부친상을 당했고, 인조반정 후에 태릉참봉, 주부, 호조좌랑이 되었다. 44살에 황주판관이 되고,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강화에 호종하여 사복판관, 고산현감을 지냈다. 48살(1629, 인조7)에 별시문과에 급제하고, 정언, 지평을 거쳐 안악군수가 되었다. 명나라 패잔병의 노략질을 막아 공을 세우고, 51살에 해주목사가 되었다. 선정을 베풀어 이듬해 황해감사로 승진했다. 호조참의가 되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호종했으며, 다음해 평안감사가 되었으나 탄핵을 받고 낙향했다. 57살에 온성부사를 거쳐 이듬해 함경남도 병사로 변방의 군민(軍民)을 보살폈다. 60살에 예조참의, 동부승지를 지내고 이듬해 전라감사로 나갔다. 63살에 좌부승지로 심기원의 역모를 즉시 국문치 않아 파직되고, 강원감사가 되었다. 다음해 병조참의가 되어 동지사로 연경에 다녀왔으며 대사간을 거쳐 홍청감사가 되었다. 67살에 도승지, 경기감사가 되고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다. 효종 즉위 후에 경상감사로 나갔다가 71살에 형조판서가 되고 지경연사를 겸했다. 이듬해 예조판서, 우참찬이 되고 다음해 우빈객, 이조판서, 형조판서를 지냈다.    

 

 죽어 옳은 줄을 내거든 모를손가.

 물 모금 마시고 아무러나 사는 뜻은

 늙으신 저 하늘 믿자고 나중 보려 하노라.

 

이 시조는 그가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광해군의 난정을 보고 용인에 우거하던 시절에 지은 작품일 것이다. 그의 외할아버지 김명원(金命元, 1534-1602)은 어렸을 때 그를 보고 크게 기대했다고 하는데, 이런 기대를 이루지 못하고 낙향한 심정이 이 작품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초장에는 벼슬 없이 시골 선비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무의미함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학자가 아니었으므로 전원에서 학문하는 데 삶의 의의를 두지 않았다. 그러니 광해군의 폭정 아래 시골에 엎드려 있다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 하다고 말한 것이다. 중장에는 궁핍하게 연명하고 있는 자신의 상황을 말한 것이다. 이렇게라도 목숨을 잇고 있는 까닭은 언젠가는 광해의 난정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종장에서 늙은 하늘을 믿는다는 말로 대신하였다. 늙은 하늘이란 유구히 인간사를 지켜보아온 하늘을 말하는 것이리라. 하늘의 도리가 있다면 모든 일은 필시 옳은 데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신념 하나로 어려운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희망의 날이 오지 않겠느냐는 기대대로,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그는 벼슬길에 나가 여러 지방관을 거쳤고, 행정수완을 발휘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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