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인평대군의 시

김영도 2020. 8. 10. 22:12

인평대군(麟坪大君) (, 1622-1658)는 인조의 셋째 아들이다. 인조효종 실록과 <국조인물고>에 보면, 자는 용함(用涵)이고 호는 송계(松溪)로 효종의 동생이다. 7(1628, 인조6)에 인평대군에 봉해지고 14살에 모친상을 당했으며, 15살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 남한산성으로 부왕을 호종했다. 19(1640, 인조18)에 소현세자의 일시 귀국을 대신해서 볼모로 심양에 잡혀갔다가 돌아왔다. 21살과 이듬해에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24살에 도총부 도총관이 되었고, 소현세자가 돌아오자 연경에 다녀왔다. 2년 후 다시 청나라에 가서 세폐를 줄이고 돌아왔고, 28살에 부왕의 상을 당했다. 효종 즉위 이후에도 여러 번 청나라에 사은사로 가서 양국 관계를 조정했다.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으며 제자백가에 두루 통했다.

 

 

주욕신사(主辱臣死)라 하니 내 죽음직 하다마는

큰 칼 옆에 차고 이제도록 살았기는

성주(聖主)의 만덕중흥(萬德中興)을 다시 보려 하노라.

 

 

주인이 호사(好事)하여 원객(遠客)을 위로(慰勞)할새

다정가관(多情歌管)이 배아느니 객수(客愁)로다.

어즈버 밀성(密城) 금일(今日)이 태평(太平)인가 하노라.

 

 

바람에 휘었노라 굽은 솔 웃지 마라.

춘풍(春風)에 피온 꽃이 매양에 고왔으랴.

풍표표(風飄飄) 설분분(雪紛紛)할 제 네야 나를 부러리라.

 

 

세상 사람들이 입들만 성하여서

제 허물 전혀 잊고 남의 흉보는구나.

남의 흉 보거라 말고 제 허물을 고치고자.

 

 

소원(小園) 백화총(百花叢)에 나니는 나비들아.

향내를 좋이 여겨 가지마다 앉지 마라.

석양(夕陽)에 숨궂은 거미는 그물 걸고 엿는다.

 

 

그의 작품으로 전하는 다섯 수는 주제가 각기 다르다. 첫 수는 청나라에 굴복한 울분을 읊은 것이고, 둘째 수는 사신으로 갈 때 안주(安州)에서 전별을 받고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며, 셋째 수는 소나무의 절개를 부러워하는 내용이다. 넷째 수는 남의 흉을 보지 말고 자신의 허물을 고치라는 권계(勸戒)이며, 다섯째 수는 먹고 먹히는 험한 세상을 곤충 세계로 풍자한 것이다.

첫 수의 초장은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는 옛말을 상기하여, 아버지 인조 임금이 삼전도에서 항복하는 굴욕을 당했으니 죽어 마땅하다고 자책했다. 중장에서 지금껏 살아서 큰 칼을 어루만지는 것은 원대한 포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종장에서 그것은 임금이 넓은 덕으로 나라의 힘을 다시 길러서 일으켜 세우는 것을 보고 싶어서라고 했다. 치욕을 참고 살아 있는 의의를 밝힌 것이다. 둘째 수는 그가 청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안주(安州)의 위로연 자리에서 읊은 시다. 초장에서 먼 길 가는 자신을 위로하는 안주목사의 세심한 배려에 고마워하고, 중장에서 다정스러운 풍악소리도 멀리 떠나는 자신에게는 시름을 재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종장에서 안주 고을이 태평스럽다고 하여 이런 잔치를 열어준 목사의 선정을 칭송하는 것으로 그 고마움에 답하고 있다.

셋째 수는 솔의 절개를 읊은 것으로, 바람에 굽은 솔을 웃지 말라면서 봄바람에 피어난 꽃도 매양 곱기만 한 게 아니라 언젠가는 시들기 마련이니, 바람이 소슬하고 흰 눈이 날리는 겨울이 오면 봄날의 꽃이 굽은 솔의 절개를 부러워하리라는 것이다. 이는 시류에만 편승하려는 무리들에게 국난의 위기를 당하여 이를 극복하려고 수없이 청나라를 방문했던 자신의 노력과 충성심을 드러내 보인 것이라 하겠다. 넷째 수는 남의 흉만 보는 무리들에게 주는 경계의 말이다. 국가경영을 잘못하여 국난을 초래했다고 비난하는 말에서부터 사소한 남의 허물을 문제 삼아 떠드는 사람들에게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으며 스스로의 허물은 없겠느냐고 그것을 고치라고 하였다. 다섯째 수는 작은 동산에 핀 꽃떨기 속을 날아다니는 나비를 불러서 향내를 좇아 가지마다 앉지 말라고 했다. 향락에 탐닉하는 무리에게 주는 경고이기도 하고, 조심성 없이 자기 뜻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주는 당부이도 하다. 그렇게 좋을 대로 좇아가다가는 어디엔가 심술궂은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엿보고 있다가 잡아챌 것이니 사람도 그렇게 엿보는 사람들의 계략에 말려들 것이라고 했다. 험난한 정국이나 세상살이를 암시하는 우화적인 수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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