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송질의 시

김영도 2018. 12. 17. 16:39

송질(宋瓆, 1676-?)은 영조 때의 문신이다. <영조실록><국조방목>에 의하면, 그의 자는 중윤(仲潤)이고 호는 치암(耻菴) 또는 학록(鶴麓)이며 본관은 여산으로 이천 출신이다. 52(1727, 영조3) 성균관 유생일 때 문명(文名)이 있었다. 참봉을 거쳐 53(1728, 영조4)에 문과에 급제하여 59(1734,영조10)에 지평이 되었다. 61살에 정언이 되고, 이듬해 장령, 시강원 필선을 거쳐, 다음해 문학, 헌납이 되었다. 64(1739, 영조15)에 집의, 헌납, 사간을 역임하고, 뒤에 세자시강원 보덕을 지냈다.




바둑에 잠착(潛着)하여 해 지는 줄 모르다가

청산(靑山)엔 길 늦은 나귀 바삐 모니

목동(牧童)이 나더러 이르되 그림 같다 하더라.




무언가 딴 짓을 하다가 늦게야 자신의 갈 길을 깨닫고 허둥대는 모습을 남들은 멋있어 보인다고 한다는 말이다. 그는 쉰 살이 넘어서 벼슬길에 나와서 십여 년 동안에 정3품 보덕에까지 올랐다. 이 시는 아마도 이런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초장에서 갈 길을 접어두고 바둑에 정신을 골똘히 집중하고 있었다는 말은 독서와 학문에 반생을 보낸 것을 암시한 것이고, 중장에서 청산으로 가는 길에서 나귀를 바삐 몬다는 것은 청운의 길에 뒤늦게 나와서 관직생활에 바쁜 모습을 스스로 객관화해 본 것이라 하겠다. 종장에서 뒤늦게 서두르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늙었지만 노익장(老益壯)의 기상으로 조정에 바삐 오가는 자신을 보기 좋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청산과 나귀가 나왔으니 목동이 구경한다고 해야 은유의 틀에 호응이 되고, 그림 같다고 한 것은 미화법이다. 어쨌거나 늦게 벼슬살이하는 자신에 대한 반성적 사고요 형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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