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섬 탐방기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도 탐방기

김영도 2018. 10. 13. 20:19

1.위치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 영흥로 294 서울부동산   지번주소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 내리 213

 

2.교통

(갈때,올때)자가용

 

3.상세설명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에 속한 섬이다. 면적 23.46km2, 해안선 길이 42.2km이고, 섬 중앙에 최고봉인 국사봉(, 128m)이 있다. 주민은 2,551가구 5,018명, 초등학생 227명, 중학생 104명, 고등학생 123명이 있다.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23.7km 떨어져 있으며, 동쪽 1.2km 지점에는 선재도가 있다.

명칭의 유래를 보면 옛날 중국에서 오던 배가 풍랑을 만나 암초에 부딪혀 파손되어 침몰 직전에 있었는데, 거북이 한 마리가 나타나 구멍을 막아 육지로 인도해주었다. 그 뒤 신령이 도와준 섬이라 하여 영흥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다른 유래를 보면 원래 명칭은 연흥도()였으나 고려 말 익령군() 왕기()가 정국의 불안으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온 식구를 이끌고 이곳으로 피신하면서 익령군의 영()자를 따서 영흥도()라고 칭했다고 한다.

영흥도는 위치의 중요성 때문에 역사에 자주 등장한다. 영흥도 앞의 바닷길은 삼남지방에서 세곡을 싣고 오거나 중국에서 우리나라 평택으로 들어올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역이다. 또한 남해에서 서해상을 따라서 한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영흥도를 거쳐 가야 한다. 오늘날도 대형 선박들이 통과하는 항로로 이용되고 있다.

영흥도 앞 바다는 삼국시대에도 중요한 뱃길이었다. 신라와 동맹을 한 당나라는 백제를 침공하기 위하여 덕적도를 거쳐 영흥도 이웃 섬 풍도에 배를 정박했다. 『고려사()』에는 영흥도 주민이 몽골군에 쫓기던 삼별초를 도와 항거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정부가 몽골에 항복하자 이에 항거한 삼별초는 강화도를 떠나 진도로 정부를 옮겨 가면서 영흥도에서 저항한 기록이 있다.

1270년 몽골족 즉, 원나라와 항쟁하던 삼별초는 전남 진도로 진영을 옮기면서 영흥도에 70일 동안 웅거했다. <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김방경을 역적추토사로 삼아 군사 60여 명을 거느리고 몽골 송만호() 등의 군사 1천여 명과 함께 삼별초를 추격하여 적선이 영흥도에 정박해 있는 것을 바라보고 방경이 치려하니 송만호가 두려워하여 말리었다.”

몽골군의 공세로 영흥도에 있던 삼별초는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고 이 와중에 삼별초에 소속된 사람들 중 1천여 명이 여몽연합군에게로 투항했다고 한다.

고려 말 왕족이었던 왕기()는 나라가 곧 패망할 것 같아서 개경을 떠나 멀리 영흥도로 은신했다.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고 후손은 성을 전씨()나 옥씨()로 바꾸고 숨어서 살던 시절이었다. 익령군()인 왕기의 목숨을 구해준 섬이라 해서 이후에 이름을 연흥도()에서 영흥도()로 바꿨다고 한다. 익령군 후손은 목장에서 일하며 말을 키우는 목동으로 살았다고 한다. 1751년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목장에서 말을 치던 영흥도 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예전의 지도에서는 영흥도 서쪽에는 또 ‘양선과거수로지영종()’이라고 적혀 있다. ‘서양 배가 이 물길을 따라 영종도에 닿았다’는 뜻이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와 미국 군함들이 영흥도를 지나갔다는 기록이다.

영흥도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거점이 된 곳이다. 인천상륙을 위하여 국군은 북한에게 점령당한 영흥도를 손에 넣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1950년 8월 20일 영흥도를 탈환했다. 상륙 지점은 영흥도의 북쪽 십리포에 있는 산돌뿌리 해변이었다. 십리포 해변에는 이 당시 희생된 이들을 위한 전적비가 세웠다.

영흥도에서는 8세기 중후반에 건조된 현존 최고 ‘영흥도선’이 발견되었다. 2010년 9월 영흥도 근해에서 발견된 고선박 ‘영흥도선’은 수중 발굴조사를 통해 남북국시대 선박임이 확인됐다. 2013년에는 본격적인 수중 발굴조사를 통해서 고선박 1척을 인양하고, 도자기 870여 점을 건져 올렸다. 선박과 유물은 모두 8세기 중후반경 것으로 최종 분석됐다.

영흥도는 인천과 서울이 가까운 섬으로, 다른 섬과 비교하여 전략적인 위치 때문에 역사적으로 상처를 많이 입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외세의 침입 통로가 된 것이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영흥도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리에서 기억되고 있다. 이제 서해안시대를 맞이하여 영흥도는 서해의 요충지로서 선재대교와 영흥대교의 개통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역사의 섬에서 관광의 섬으로 변하고 있는데 감히 누구도 영흥도가 이렇게까지 변화되었을까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2001년 영흥대교 개통과 함께 뭍과 이어진 영흥도는 인천 앞바다에서 백령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뱃길로 1시간이나 떨어진 외롭고 먼 섬이었다. 영흥대교의 개통은 크나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다리를 건너오면 미니공원과 함께 커다란 안내판이 있다. 코미디언 이용식이 모델로 나오는, 영흥도를 알리는 대형홍보판이다. 공원에는 국사봉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국사봉’(해발 123m)은 영흥도 최고봉이다. 섬 전체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고려 왕족의 후예들이 봉우리에 올라 잊혀져가는 나라를 생각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국사봉’()이다.

영흥도 해안은 섬 전체가 도로로 연결돼 있다. 영흥도에서 제일 먼저 들를 곳은 진두선착장이다. 영흥대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보이는 진두선착장은 섬의 활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수협직판장이 있어 싱싱한 회와 해산물을 맛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사실 영흥도 전체는 관광객들과 전쟁을 치른다.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은 대개 ‘생태 체험’을 하려고 몰려오는 것이다. 영흥도 갯벌은 주민들에게는 큰 바다 농토이다. 검은여선착장 왼쪽 건너편으로 아득하게 펼쳐진 갯벌에서는 굴이며 바지락이 널려 있다. 갯벌 위에 뾰족이 솟은 검은 돌덩이에서도 굴이 잘 자란다. 동네 사람들은 그래서 검은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킨다.

검은여포구에서 북쪽으로는 해안길이 이어진다. 오른쪽 넓은 갯벌 위에는 시멘트로 여러 개의 노두를 만들어 두었다. 가운데에 원형으로 화단을 조성하여 로터리 형식으로 차들이 회전하게 되어 있다. 이어 조금 더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내7리삼거리’다. 여기서 직진하면 십리포해변이 나온다. 이 주변 역시 ‘영흥도펜션타운’이다. 그 앞 갯벌에서는 생태 체험이 열리고 있다. ‘내리생태체험어장’이다. 여름에는 바지락, 겨울에는 굴을 채취하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복지회관 옆에는 기차로 만들어진 카페가 있다. 이 앞으로 바다로 들어가는 노두가 있다.

영흥도에는 십리포 · 장경리 · 용담리 등 3개의 해수욕장이 있다. 내리삼거리에서 왼쪽으로는 장경리해변으로 가고, 직진은 십리포다. 복지회관 주변을 지나면, 왼쪽은 낮은 야산을 낀 해안도로다. 이 앞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작은 섬이 ‘길마섬’이라고 한다.

여기서 차로 5분이면 십리포 해변에 닿는다. ‘십리포해수욕장’에는 천연기념물인 소사나무 군락지와 고운 모래사장이 있어 차에서 내려 잠시 산책을 즐기는 것도 좋다. 진두선착장에서 10리가 떨어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울창한 숲이 바다를 막고 있다.

숲 속에는 텐트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바로 ‘소사(서어)나무 숲’이다. 일반적인 해송과는 다른 독특한 볼거리다. 고운 모래와 깨끗한 바다 못지않게 유명한 것이 소사나무 군락이다. 해풍을 막기 위해 150년 전에 조성한 인공조림이다. 한여름 뙤약볕을 막아줄 만큼 울창하지만 울타리를 쳐서 들어갈 수는 없다. 대신 숲 가장자리 그늘에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다지 넓지 않은 해수욕장이다. 해변은 길이 1km로 자갈밭이다. 이곳 십리포 해수욕장은 넓지는 않지만 해변이 서해에서는 보기 드물게 굵은 모래와 자갈로 이뤄져 있다. 눈앞으로 무의도와 실미도가 보인다. 그리고 독살이 있는데 좌우로 길게 돌을 쌓아 만든 시설이다. 물이 빠지면 해수욕장 앞바다는 갯벌체험장이 된다. 이곳에 최근 모래사장 길을 돌계단으로 새롭게 조성했다. 또 여러 장승조형물과 운동기구, 주차장 등 다양한 편의시설도 마련했다. 한쪽에는 ‘인천상륙작전전초기지’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십리포 해수욕장은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였다고 한다.

장경리 해수욕장은 십리포 해수욕장에서 차로 10분 거리로, 서쪽으로 3km쯤 떨어져 있다. ‘장경리해수욕장’ 역시 울창한 송림과 고운 모래사장이 유명하다. 이곳은 오토캠핑과 갯벌체험이 가능하다. 특히 여름철 서해 낙조가 일품이다. 수령 100년이 넘는 노송들이 서로 어깨를 포갠 채 길게 늘어서 있으며, 그 앞으로는 천혜의 갯벌이 펼쳐져 있어 썰물 때를 이용해 동죽, 바지락, 모시조개 같은 각종 조개류를 캐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거기에다 저녁이 되면 수평선으로 황금빛 낙조가 깔리는데, 그 모습 또한 장관이다.


4.탐방일자

2018.10.13(토)


5.글쓴이

김영도(010-8121-8041)


6.생생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