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인천광역시 인천전환국 터 탐방기

김영도 2018. 8. 27. 10:58

1.위치

인천광역시 중구 전동


2.교통

(갈때,올때)자가용

 

3.상세설명
1866년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중건을 위하여 당백전을 주조하였다. 그러나 당백전은 오히려 물가상승을 가져왔고 이에 통용이 금지되었다.
1883년에는 개화정책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목적으로 당오전을 주조하였고, 문란해진 통화정책을 정비할 목적으로 상설조폐기관인 전환국()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당오전 역시 명목상의 화폐가치가 실제 유통가치보다 낮았으며, 물가도 폭등하여 1895년 당오전 역시 통용이 금지되었다.
1892년부터는 전환국에서 발행한 동전인 백동화가 유통되었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신식화폐발행장정에 따라 은본위제가, 1901년에는 화폐조례에 의한 금본위제가 실시되면서 이 화폐는 보조화폐로 사용되었다.
청일전쟁 이후에 일본은 조선의 재정난을 타개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차관을 도입시켰는데, 결과적으로 여러 행태로 일본상인의 조선상권지배를 용이하게 하였다. 일본화폐의 대량 유통으로 조선화폐는 그 가치가 크게 하락하였다. 특히 1904년 일본인 재정고문 메가타 다네타로가 전환국을 폐지하고, 화폐정리사업을 단행하여 화폐 가치가 불안정한 백동화를 제값으로 교환해 주지 않아 화폐 부족현상이 발생하였으며, 상공업자들과 농민만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맡게 되었다.
고종은 전환국을 근대화의 상징으로 여겼다. 여의치 않은 재정상태에서 건물을 신축하는데, 독일제 설비를 수입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러나 전환국은 당오전은 물론 새로운 백동화까지 남발해 물가고를 더욱 부추겼다.
전환국은 화폐주권을 노린 일본에 의해 폐지되었지만, 오히려 반대의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폐해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사라진 전환국이 현재 우리에게 남긴 것은 ‘원’ 이라는 화폐단위이다.


4.탐방일자 

2018.08.25(토)

 

5.글쓴이

김영도(010-8121-8041)

 

6.생생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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