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길

경기도 삼남길 제10구간 소사원길(원균장군묘~안성천교, 완결편)

김영도 2016. 3. 2. 20:34

1.위치 

원균장군묘/경기도 평택시 도일동 산82

안성천교/경기도 안성시 미양면 후평리


2.교통

(갈때)부개역~서정리역에서 7-4번 버스로 내리 정류장에서 하차

(올때)안성천교 정류장에서 110번 버스로 평택역~부개역

 

3.코스

원균장군묘~옥관자정~통복천~동부공원~대동법시행기념비~안성천교





 

4.상세설명

<옥관자정>

선사 유물로는 고덕면 방축리, 오성면 양교리, 현덕면 도대리, 팽성읍 두정리 등 여러 곳의 선사유적지에서 간돌칼·민무늬토기·석기·화살촉 등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성지로는 진위면 견산리의 성산토성지, 팽성읍 안정리의 농성(, 경기도 기념물 제74호), 안중읍 용성리토성지, 덕우리의 자미산성지(0xF471), 현덕면 덕목리토성지, 청북면 옥길리의 무성산성지(), 고덕면 방축리토성지가 있으며, 포승면 원정리에 봉수대가 있다.

주요 불교문화재로는 현덕면 덕목리의 심복사에 심복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565호), 진위면 동천리 무봉산() 기슭의 만기사에 만기사철조여래좌상(, 보물 제567호), 안중읍 용성리의 약사사지에 약사사부도()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팽성읍 객사리의 평택향교(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호)와 진위면 봉남리의 진위향교대성전(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0호)가 있다. 그리고 팽성읍 함정리 서원말에 있는 포의사()터는 1663년(현종 4)에 세워졌던 홍익한()·오달제()·윤집()의 3학사를 배향하던 곳이다.

이외에 안중읍 학현리의 김효자정문, 청북면 덕우리의 박효자비, 서소리의 오효자비, 진위면 가곡리의 이씨효열비, 현덕면 장수리의 김효자비, 죽백동의 허국효행정문 등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로 활동했던 원릉군 원균의 선무공신교서(보물 제1133호), 진위면 은산리의 삼봉집목판본(,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2호) 등이 있다.

고건축으로 팽성읍객사(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7호), 팽성읍 본정리의 홍학사비각(,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호), 고덕면 두릉리의 안재홍생가(, 경기도 기념물 제135호), 팽성읍 본정리의 홍익한의 비각인 포의각(,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호) 등이 있다. 또한 진위면 은산리의 정도전사당(), 서탄면 금암리의 한온충신사당(), 도곡동의 수성군 최유림사당, 이충동의 조광조와 오달제의 유허비를 보존한 충의각(), 청북면 고잔리의 신숙주 영정 및 감실주독 등이 있다.

묘로는 도일동의 원균장군묘(경기도 기념물 제57호), 포승면 희곡리의 이대원장군묘(, 경기도 기념물 제56호), 팽성읍 본정리의 홍익한묘, 포승면 원정리의 류처사묘 등이 있다.

기념비로는 조선 후기 대동법 실시에 앞장선 김육()과 관련된 소사동의 대동법시행기념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0호)와 비석동의 현충탑, 비전동의 반공탑, 용이동의 남아연방공화국 참전비 등이 있다.

무형문화재로는 평택농악(중요 무형문화재 제11·나호)·꼭둑각시놀음(중요 무형문화재 제3호)·서각장(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0호)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수덕사·방한사 등의 사찰, 오달제유지, 병남단오행사, 소사벌백중놀이, 유상순효자정문 등의 문화유산과 도일동의 엄나무·느티나무·향나무·물푸레나무·모과나무·팽나무, 오좌동의 은행나무·향나무, 장당동의 엄나무, 모곡동의 향나무 등 여러 수종의 거수노목()들이 시내 각지에 산재하고 있다.

약수로도 유명하여 송탄시 지역의 경우, 팔룡산 줄기에서 1,000년 전부터 나오기 시작했다는 옻우물을 비롯, 불악산의 용호정과 장군정, 왕이 옥관자를 하사했다고 전해지는 옥관자정도 유명하다.


<대동법시행기념비>

1973년 7월 10일 경기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었다. 1659년(효종 10) 영의정으로 있던 김육이 세운 석비로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에 있다.

김육(:1580∼1658)은 1638년 승문원 부제조를 거쳐 충청감사로 나갔다. 부임한 후 도내의 토지대장과 세금 징수상황 등을 점검하고 이 지방에도 대동법을 시행할 것을 상소하였다. 대동법은 각 지방의 특산물을 공물()로 바치던 폐단을 없애고 미곡으로 환산하여 바치게 하는 납세제도이다.

대동법은 1608년(선조 41)~1894년(고종 31)까지 실시되었는데, 이 제도를 시행한 후로 공부()의 불균형과 부역()의 불공평이 줄어들었고, 민간의 상거래까지 원활해졌다. 호서지방(西)에 실시한 대동법 역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후 영의정이 된 김육은 효종 10년에 대동법 시행을 만인에게 알리고, 백성을 위하는 그 법의 덕을 기념하기 위하여 삼남지방에 이르는 교통의 요지인 소사에 기념탑을 세웠다. 탑이 처음 세워졌던 곳은 현재의 위치에서 남동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언덕이었다. 1970년대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비는 높이 3m, 너비 85㎝, 두께 24㎝ 크기로 구질비신()과 이수로 이루어져 있다. 구질은 목이 짧으며 두부와 전면은 사실성이 없다. 비신은 바탕돌에 직사각형의 홈을 파내 거기에 끼워 세웠다. 비신 위쪽에 끼워진 이수는 윗면이 둥글고 아랫면은 수평인데, 양 모서리의 각을 약간 무디게 하였다. 전후 양면에는 두 마리 용이 서로 얽혀 여의주를 놓고 다투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양각되어 있다. 비문은 홍문관 부제학을 지내던 이민구가 짓고, 의정부 우참찬 오준이 글씨를 썼다.


5.탐방일자

2016.03.01(화)   


6.글쓴이

김영도(010-8121-8041)  


7.생생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