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2

인천광역시 강화도 탐방기(강화나들길 제2구간 호국돈대길17Km 갑곶돈대~초지진)

김영도 2014. 7. 7. 11:40

1.위치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와 길상면 초지리 624

 

2.교통

(갈때)구래리정류장에서 90번 버스로 강화군 청소년수련관입구 하차

(올때)청소년수련관입구 정류장에서 90번 버스로 부평역

 

3.코스

 

 

 

4.상세설명

<갑골돈대>

갑곶돈은 고려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골과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이며, 돈대는 작은 규모의 보루를 만들고 대포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이다.

삼국시대 강화를 갑비고차(甲比古次)라 부른데서 갑곶이라 이름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고려 때 몽골군이 이곳을 건너려고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우리 군사들이 갑옷만 벗어서 바다를 메워도 건너갈 수 있을 텐데’라 한탄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전설도 있다.

갑곶돈대는 고려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후 조선 인조 22년(1644)에 설치된 제물진(갑곶진)에 소속된 돈대로 숙종 5년(1679)에 축조되었다. 고종 3년(1866) 9월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극동 함대가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0월에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은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게 패하여 달아났다. 1977년에 옛터에 새로이 옛모습을 되살려 보수, 복원이 이루어졌다. 지금 돈대안에 전시된 대포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 면적 - 3,475㎡

 

<초지진>

김포군 대명리와 초지대교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초지진은 성곽의 둘레가 500m도 안 되는 작은 규모의 방어시설이다. 조선 말기, 한양으로 향하는 적군의 침략을 저지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곳은 병인양요(1866년)와 신미양요(1871년), 운양호사건(1875년)을 거치며 외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관군의 붉은 피가 물들었던 역사의 아픔이 서려 있다. 당시 격렬한 전투의 흔적은 성곽 입구의 소나무의 포탄 흔적이 되어 아직도 남아 있다.

1679년 조선 숙종 때에 세워졌던 초지진은 수많은 전투로 완전히 소실되었고 1976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성곽 안으로 위치하는 조선시대의 대포는 조선시대 후기 사용되었던 실물이다. 당시의 대포로서 가장 대형 규모인 2.5m 길이의 홍이포로 일제 관리 사택의 기둥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제자리로 찾아 옮긴 것이다.

 

5.탐방일자

2014.07.05(토) 5시간 19분(자전거로 왕복  *자전거 대여점:갑골돈대매표소 옆 슈퍼)

 

6.글쓴이

김영도(010-8121-8041)

 

7.생생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