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김성최의 시

김영도 2020. 7. 29. 21:33

김성최(金聲㝡)는 숙종 때의 문신이다. <숙종실록> <호보(號譜)>에 의하면, 그의 자는 최량(最良)이고 호는 행곡(杏谷) 또는 일로당(佚老堂)이며 본관은 안동으로 김광욱(金光煜)의 손자다. 진사시에 합격하여 1683(숙종9)년에 단양군수를 지냈으며, 내외직을 역임한 후에 통정대부로 목사에 이르렀다. 시조 2수가 전한다.

 

 

공정(公庭)에 이퇴(吏退)하고 할 일이 아주 없어

편주(扁舟)에 술을 싣고 시중대(侍中臺) 찾아가니

노화(蘆花)에 수많은 갈매기는 제 벗인가 하더라.

 

 

술 깨어 일어 앉아 거문고를 희롱하니

창 밖에 섰는 학이 즐겨서 넘노난다.

아이야 남은 술 부어라 흥이 다시 오노매라.

 

 

기록이 소루(疏漏)해서 그의 삶을 자세히 알기는 어렵지만, 사대부로 벼슬을 지냈던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수는 벼슬에 있으면서 자연을 찾아 노니는 세속과 자연의 조화를 보여주고, 둘째 수는 음악을 매개로 자연물과 하나가 되는 경지를 읊고 있다.

첫 수의 초장에서 공청(公廳)에 아전들이 다 물러가고 할 일이 없다고 했다. 지방 수령이 처리해야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말이다. 그래서 중장에는 납작한 배에다가 술을 싣고 관동 팔경의 하나인 강원도 통천 흡곡에 있는 시중대를 찾았다고 했다. 이로보아 그가 이 부근에서 벼슬살이를 했던 모양이다. 시중대는 삼면이 호수로 둘러싸여 절경을 이룬 곳이라는데 공무가 끝난 후에 산수의 절경을 찾은 것이다. 종장에서 갈대꽃과 갈매기라는 강호자연의 상징물이 나오고 이들과 벗한다고 했으니 공무를 쉴 때는 자연에 몰입하는 조화로운 생활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 수는 취흥과 선경(仙境)을 넘노는 한가한 생활을 읊은 것이다. 초장에서 술에서 깨어나 거문고를 연주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듣고 창밖의 학이 흥겨워한다는 것이니, 나와 학이 음악에 취하여 한 덩어리가 된 주객일체, 물아일여(物我一如)의 경지다. 종장에서 이 흥을 이기지 못해 술을 다시 부으라고 한다. 술과 거문고와 학을 벗삼아 취흥과 선경에 넘나들며 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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