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시

충청남도 아산시 곽한일의병장 공적비 탐방기

김영도 2019. 11. 17. 20:38

1.위치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길 5


2.교통

(갈때,올때)자가용

 

3.상세설명 

자는 원우(), 호는 장암()이다. 1869년(고종 6) 12월 10일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났다. 을미사변() 이듬해인 1896년 경기도 안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충청남도 아산·예산()·청양() 등지에서 비밀리에 동지 규합에 힘썼다.
1906년 4월 4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다시 의병을 일으켜 해미읍성()을 점거하려다 민종식() 의진()이 홍주(:현 홍성)에서 일본군에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합류해 돌격장·소모장()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적의 대공세로 인해 결국 홍주성이 함락되자 이후 순창()에 있던 최익현() 의진에 합류하고자 하였으나 최익현 의진 역시 이미 패한 뒤라 독자적으로 거사 계획을 추진하였다.
같은 해 9월 김덕진()·김운락(박윤식(이남규()·정재호() 등과 협의해 거듭 의병을 일으켜 참모()로 임명되었다. 이어 수백 명의 군사를 예산읍에 배치하고 다음달 5일 총공격을 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사전에 거사계획이 발각되는 바람에 의병장 민종식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1907년 7월 종신유배형을 받고 지도(:전라남도 신안군)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중 사면으로 풀려난 뒤에는 대한독립의군부()에 몸담아 1913년 2월부터 총무총장()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국권회복 운동의 방향 모색, 대한독립의군부의 조직 구성, 의군부원 모집과 군자금 모금 등을 주도하다, 이른바 '독립의군부사건'으로 체포되어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출옥 후에도 계속 독립투쟁을 전개하다 1914년 다시 발각되어 유배되었고 1916년에 종신집행유예로 바뀌어 1936년 사망할 때까지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4.탐방일자 

2019.11.16(토)

 

5.글쓴이

김영도(010-8121-8041)

 

6.생생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