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0월 19일 경기도기념물 제127호로 지정되었다. 수암봉()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려와 만들어진 소금절골과 작은골 사이의 능선을 이용하여 평지를 감싸도록 쌓은 전형적 평산성()이다.
자연 지세를 이용한 읍성의 형태는 한국 성곽의 특징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절충식이다. 성의 명칭에 대해 역사상으로 성터가 과거 안산읍의 진산 아래에 있는 데다가 안산관아, 안산향교, 안산사직단, 안산우사단 등이 있었던 곳이므로 안산읍성으로 명칭이 부여되었다.
전체 둘레 843.6m, 성 둘레 772m, 북벽 219.4m, 남벽 225.5m, 서벽 222.1m이다. 성은 지세를 이용하여 쌓았기에 직사각형이며, 모서리 쪽은 약간 둥글게 모줄임하였다. 주요 방어 지역으로 여겨지는 서쪽과 북쪽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바깥쪽이 매우 가파르며, 몇 개의 높은 단을 이루고 있다. 성벽은 자연 능선에 덧붙여 쌓았으며, 평지인 남쪽은 돌을 쌓기도 하였다.
성 안의 주된 길목이었던 남쪽에 문터가 있는 것을 비롯하여 북서쪽 꼭대기에는 편평한 터가 있는데, 장대()가 있었던 것 같고, 곳곳에서 물고기 등뼈 무늬가 찍힌 기와 조각이 많이 발견되어 건물이 여러 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성의 형태로 보아 군사적 목적보다는 행정적인 역할이 더 강한 전형적인 읍성으로 보이며, 조선 초기 왜구를 막기 위하여 세웠던 서해안 지역 여러 읍성과 그 계통이 같다.
해안으로 침입하던 왜구에 대비하여 이곳에 읍성을 축조하였는데, 성이 축조된 시기에는 바로 뒤편의 수리산()이 천혜의 산세를 가지고 있어 따로 산성을 축조하지 않아도 피난이 가능했다고 여겨진다. 조선시대 읍성 성립 이전의 발생기적 읍성으로서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관아지는 처음에는 이웃인 목내동에 있었으나, 1669년(현종 10)에 이곳으로 옮겼다. 정문인 평근루()와 객사·동헌 등의 행정시설, 그리고 옥사()와 창고가 있었다. 그러나 모두 파괴되어 주춧돌과 장대석·기와 조각 등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