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순(金敏淳, 1776-1859)은 순조․헌종․철종 때의 시인이다. <안동김씨세보>와 <청구영언>, <가곡원류> 등에 의하면, 그의 자는 신여(愼汝)이고 호는 매옹(梅翁) 또는 매월송풍(梅月松風)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청음 김상헌(金尙憲)의 7대손이고 김수증(金壽增)의 5대손이다. 이복 형 김문순(金文淳)은 순조의 장인 김조순(金祖淳)과 더불어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벼슬은 익종(翼宗)이 대리청정할 때 음보(蔭補)로 경기도 지평(砥平) 현감을 지냈고, 노인 우대직(優待職)인 수첨추(壽僉樞)를 역임했다. 시조 15수가 전한다.
공명(功名)은 낭(狼)을 끼고 부자(富者)는 중지원(衆之怨)을
단사표음(簞食瓢飮)을 누항(陋巷)에 안분(安分)커니
세상에 자황분경(雌黃奔競)을 나는 몰라 하노라.
북창(北窓) 양풍하(凉風下)에 활짝 벗고 누웠으니
홍진(紅塵)에 염절(念絶)하고 일권다경(一卷茶經) 뿐이로다.
아마도 희황상인(羲皇上人)은 나뿐인가 하노라.
세상에 마음이 없어 북산하(北山下)에 누웠으니
공명(功名)이 가소(可笑)로다 지락(至樂)이 여기거니
이윽고 유의(有意)한 명월(明月)은 날을 좇아 오나다.
백발(白髮)을 흩날리고 청려장(靑藜杖) 이끌면서
만면홍조(滿面紅潮)로 녹음중(綠陰中)에 누웠더니
우연히 흑첨향단몽(黑甜鄕丹夢)을 황조성(黃鳥聲)에 깨었다.
새 소리 지저귀니 날 밝은 줄 알고 일어
일호주(一壺酒) 곁에 놓고 삼척현금(三尺玄琴) 희롱(戱弄)하니
이윽고 한가한 벗님네는 나를 찾아오더라.
그는 아버지 김이신(金履信, 1723-1793)의 재취부인에게서 태어났고, 18살 때 아버지가 죽었다. 이복형이 세도가의 일원이었지만 그는 현직(顯職)에 오르지는 못했고 음보로 현감을 지냈을 뿐이다. 그렇지만 세도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치판의 형편을 알고 있었고, 명문가인 만큼 생활의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위에 인용한 5수는 그런 사정을 드러내준다.
첫 수는 부귀공명을 욕심내지 않고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자신의 처지를 읊은 것이다. 공명을 이루려면 시랑(豺狼)같이 탐욕스럽고 잔인한 사람을 끼어야 하고, 부자가 되려면 여러 사람의 원망을 사게 된다고 하여, 부귀공명의 이면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세도를 부리는 형의 실체를 은근히 풍유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신은 한 도시락의 밥과 한 표주박을 물을 마시는 소박한 생활을 하면서 누추한 골목에 살지만 제 분수를 지켜 편안하다고 했다. 부귀와 벼슬을 바라는 무리들이야 자황으로 답안지나 서류를 고쳐서 구직운동에 바쁘겠지만 자신은 그런 것을 원치 않으니 한가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세도가의 동생이긴 하지만 거기에서 한 걸음 거리를 두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풍자와 냉소적 시각으로 드러내고 있다. 둘째 수는 도연명의 ‘여자엄소(與子儼疏)’에 나오는 구절을 따와서 세속적 가치를 멀리한 자신의 형편을 읊은 것이다. ‘오뉴월에 북쪽 창 아래 누워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이야말로 복희씨 시절의 사람과 같다.’라고 한 도연명의 말을 초장과 종장에 배치하고, 중장에다 자신의 말을 더했다. 세속적 가치에서 마음을 끊고 오직 한 권의 다경(茶經)을 읽으며 차를 즐기는 담담한 마음으로 산다는 것이다. 셋째 수에서도 공명에 마음을 끊고 자연을 벗하는 심정을 읊었다. 세속적 공명에 환멸을 느끼고 자연 속에서 지극한 즐거움을 찾더니 이러한 자신의 심정을 아는 것처럼 밝은 달이 떠올라 함께 노닌다고 했다. 넷째 수도 자연 속에서 꿈속의 이상향을 그려보았다는 현실도피적인 심정을 드러낸 것이다. 백발이 되어 명아줏대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술에 취하여 붉어진 얼굴로 녹음 속에 들어가 누워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곤히 든 낮잠의 단꿈을 꾀꼬리 소리 때문에 깨었다고 하였다. 그는 세도 대감으로 뽐내는 형들이 싫었는지 본디 자연을 좋아한 성품이었는지 세속을 싫어하고 자연을 좋아한다고 읊고 있다. 마지막 수에서는 맹호연(孟浩然)의 ‘춘효(春曉)’에 나오는 “봄잠에 날 새는 줄 몰랐더니 곳곳에 새소리 들리는구나.”라는 시 구절을 연상시키는 표일(飄逸)한 분위기 속에서 술과 거문고를 옆에 놓고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봄날 아침에 새소리가 시끄러운데, 그 소리에 잠이 깨어 한 병 술과 석 자 거문고로 무료함을 달랜다. 이 때 한가한 친구가 그를 찾아와 함께 술과 음악을 즐긴다는 것이다. 세속적 가치를 외면한 그의 태도를 볼 수 있다.
남원(南園)에 꽃을 심어 백년춘색(百年春色) 보렸더니
일조(一朝) 풍상(風霜)에 피는 듯 이울거다.
어즈버 탐화봉접(探花蜂蝶)은 갈 곳 몰라 하노라.
내게는 병이 없어 잠 못 들어 병이로다.
잔등(殘燈)이 다 진(盡)하고 닭이 울어 새우도록
오매(寤寐)에 님 생각노라 잠든 적이 없어라.
네 얼굴 그려내어 월중계수(月中桂樹)에 걸었으면
동령(東嶺)에 돋아 올 제 두렷이 보련마는
그려서 걸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소년 십오이십시(十五二十時)에 하던 일이 어제런 듯
소꿉질 뛰움질과 씨름 탁견 유산(遊山)하기 소골(小骨) 장기 투전(投箋)하기 제기 차고 연 날리기 주사청루(酒肆靑樓) 출입타가 사람치기 하기로다.
만일에 팔자가 좋아망정 신수(身數)가 험하던들 큰일 날 뻔하괘라.
여기서는 젊은 날의 풍류와 잡희(雜戱)에 열중했던 일들을 읊고 있다. 그는 과거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과거를 볼 수 없는 처지였거나 과거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하여 주색잡기에 빠졌던 일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첫수에는 꽃을 심어 오래도록 봄빛을 보려했으나 하루아침에 바람과 서리에 시들어지니 꽃을 찾는 벌과 나비는 어쩔 줄 모르게 되었다고 하여, 화류계를 찾았으나 꽃 같이 곱던 여인이 죽은 것을 알고 아달파하는 마음을 상징하게 하였다. 둘째 수는 님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았는데, 역시 어떤 여인을 두고 밤새 한잠 이루지 못했다고 엄살을 부리고 있다. 셋째 수에는 님의 얼굴을 그려서 달 속 계수나무에 걸어두고 달이 돋으면 바라보고 싶지만, 그리 해 줄 사람이 없어서 아쉽다고 했다. 이 또한 님을 몹시 보고 싶다는 말이다. 마지막 수는 젊어서 온갖 놀이에 빠졌던 일을 나열한 사설시조다. 열다섯 스무 살에 골몰했던 놀이들로 소꿉질, 뜀박질, 씨름, 태껸, 등산, 골패, 장기, 투전, 제기, 연 날리기, 기생집에 출입하다가 사람 치기 등을 늘어놓았다. 이것들은 대개 싸움이나 노름인데 팔자가 좋았기 망정이지 운수가 사나웠다면 큰 봉변을 당할 뻔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젊은 날에 빠졌던 일들을 아주 솔직하게 늘어놓기도 했다.
좌상(座上)에 객상만(客常滿)하고 준중(樽中)에 주불공(酒不空)은
북해풍류(北海風流)를 내남없이 할 듯하되
아마도 초당상몽(草堂上夢)은 못 미칠까 하노라.
남양(南陽)에 누운 용이 만복경륜횡익도(滿腹經綸荊益圖)라
삼고은(三顧恩) 어수계(魚水契)로 갈력극복(竭力克復)하렸더니
추풍(秋風)에 오장성운(五丈星隕)을 못내 슬퍼하노라.
청매주(靑梅酒) 빚어 놓고 영웅(英雄)을 의논할 제
신뢰일성(迅雷一聲)에 잡은 저를 놓단 말가.
간웅(奸雄)도 사군급지(使君急智)에 아득히도 속았다.
이 몸에 가진 병(病)이 한두 가지 아니로다.
보아도 못 보는 눈 들어도 못 듣는 귀 맡아도 못 맡는 코 말 못하는 입이로다.
이따금 요통과 복통이며 현기구담체증(眩氣嘔痰滯症)은 별증(別症)인가 하노라.
여기에서는 가슴 속의 숨은 포부와 울분을 담은 작품들을 골랐다. 첫 수에는 후한 말 북해상(北海相)이었던 공융(孔融)의 말을 인용하여 그 풍류는 흉내낼 수 있지만, 제갈 양이 남양의 융중(隆中) 초려에서 세상을 구하고자 꾸었던 큰 꿈은 아무나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여, 두 사람의 풍류와 꿈을 은근히 부러워하는 심정을 담았다. 공융의 말은 자리에 손님은 항상 가득하고, 술통에 술이 비지 않는다는 뜻으로 널리 교유하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둘째 수는 제갈 양이 남양에서 아직 때를 얻지 못해 가슴 속에 형주와 익주를 경륜할 계책을 품고 있다가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를 받고 물과 고기 같은 관계[水魚之交]를 맺어서 유비의 지우(知遇)를 힘써 갚으려 하다가 결국 오장원(五丈原)에서 별처럼 떨어진 고사를 읊은 것이다. 이렇게 영웅의 비극을 슬퍼함으로써 그런 일생을 살고 싶다는 은연중의 소망을 드러냈다. 셋째 수는 유비의 고사를 읊은 것이다. 유비가 조조를 죽이려고 동승(董承)과 모의할 때, 조조가 유비를 청하여 매실주를 마시며 천하의 영웅이 자신과 유비뿐이라 하니, 유비가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마침 급한 우레 소리에 ‘빠른 우레와 매운 바람이 있으면 반드시 변화가 있다.’라는 공자의 말을 이용하여 간웅인 조조를 안심시키고, 서주로 돌아간 것을 말했다. <삼국지연의>를 읽고 그 속에 나오는 영웅의 고사를 감상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통하여 자신도 이러한 영웅과 함께 하고 싶다는 소망을 담아낸 것이다. 마지막 수는 자신의 병을 나열한 사설시조인데,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맡아도 못 맡는 척, 말할 수 없는 가슴 속의 병을 말하여, 이로써 내면의 울분을 상징하고 있다. 울분의 토로를 위장하기 위하여 요통, 복통, 현기증, 구토, 천식, 체증 따위를 늘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