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2

경기도 시흥시 늠내길 제1구간 숲길(시청~시청)

김영도 2015. 4. 21. 09:55

1.위치

시흥시청/경기도 시흥시 장현동 300

능곡선사유적공원/경기도 시흥시 능곡동

     

2.교통

(갈때)소사남부역 정류장에서 63번 버스를 타고 시흥시청정류장에서 하차후 건너편 우측으로 늠내길을 따라간다

(올때)역순으로 진행한다

 

3.코스

시흥시청~옥녀봉~작고개~사색의숲~가래골약수터~만남의숲~진덕사~가래울마을~잣나무숲~관무산~선사유적공원~장현천~시흥시청

 

 

4.상세설명

<군자산>

군자봉은 시흥시청 앞에 위치한 해발 198m의 나지막한 산으로 민간신앙을 품고 있는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 정상에는 수 백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군자성황사지가 있고, 매년 음력 10월 3일에는 군자성황제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현재 군자봉을 오르는 산책길은 시청마당에서 출발하는 늠내길(숲길)구간으로 수도권 시민들의 트레킹 코스로 인기가 좋습니다. 산의 유래에 대하여는 설이 구구하다. 군자동 구지정 출신인 풍수지리 연구가인 지창룡(池昌龍, 1922~1999) 씨는 산세가 군자의 모습과 같기 때문에 ‘군자봉’이란 산명이 유래하였다고 주장한다. 군자봉은 사방 어느 곳에서 보아도 군자의 위엄한 자태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학자들은 ‘굿’봉에서 유래하였다고 주장한다. 이 산 정상에 있었던 성황사(城隍祠)에서 굿을 했었던 사실에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는 조선조 제6대 임금인 단종(端宗)이 안산 능안(陵內, 현 안산시 목내동)에 있는 생모 현덕왕후(顯德王后)의 묘소에 참배하러 가는 길에 이 산을 보고 산봉이 흡사 연꽃처럼 생겨 군자의 모습과 같다하여 군자산(→ 군자봉)이라 했다는 것이다. 옛 시흥군의 군자면은 1914년에 부ㆍ군ㆍ면 통폐합 때 안산군의 대월면(大月面), 마유면(馬遊面), 와리면(瓦里面)의 세 개 면을 합하면서 이 산명을 따서 명명하였으며, 또 군자동의 법정동 및 행정동명과 군자초ㆍ중ㆍ공고의 교명, 군자농협, 군자우체국, 군자파출소 등의 명칭이 모두 이 산명에서 취한 것이다. 군자봉은 서해연안에 있는 산으로 삼국시대에는 한강 유역과 남양만을 연결하는 교통로를 지키는 요지로 산성(君子山城)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속 신앙에서는 영험이 있는 산으로도 빼놓을 수 없는 영산(靈山)이다. 산 정상에는 수백 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있다. 군자봉은 영험한 산이라 그런지 많은 전설이 구전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고려 성종 때 서희(徐熙) 장군과 경순왕의 빈인 안씨 및 그녀의 친정 어머니인 홍씨와 얽힌 이야기라든지, 군자봉이 석 자 세 치 깎인 얘기 등 무수한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군자봉을 오르는 산책길은 구지정 영응대군 재실인 경효재에서 약수터를 거쳐 체육시설을 경유하여 가는 길과, 구지정 큰말에서 체육시설을 거쳐 올라가는 길, 그리고 영각사 앞에서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산행하기에는 무리가 없다. 그 밖에 군자동 산 뒤에서 굿당을 거쳐가는 길과 샛터에서 구지정 사이 가래골 약수터에서 오르는 길이 있는데, 이곳은 산세가 가파르기 때문에 시에서 1995년에 산행하기에 편리하도록 로프시설 50경간을 설치하였다. 

 

<능곡선사유적공원>

시흥 능곡 선사유적지는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 2003년 부터 2007년 사이에 시행한 학술발굴조사에 의거 24기의 주거지가 모여있는 마을유적으로 확인되었다. 이 선사유적지는 지금으로부터 약 6천년 전 신석기시대로 추정되며, 이 시기는 농사보다는 열매채집, 물고기 낚시, 수렵 등을 통해서 인간이 살았던 시기이다.
주거지를 살펴보면, 평면행태는 귀죽인 네모골(말각방형)로 한 변의 길이는 3~5m 정도이며, 기둥구멍은 4개소, 6개소, 8개소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내부시설로는 화덕자리(노지), 물도랑(구), 저장구덩이 등이 있다. 화덕자리는 건물지 중앙에 1개소씩 놓여 있으며, 물도랑은 12호 건물지에서만 확인되었고 끝부분이 저장구덩이에 연결되어 있다. 발견된 유물은 대부분 토기이며, 석기는 망치를, 갈돌, 갈판, 화살촉 등이 소량으로 출토되었다. 토기는 크기, 형태, 무늬별로 다양하게 출토되어 신석기시대의 토기제작시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지금의 유적공원은 문화재 복원정비사업의 결과이다. 주거지 24기 중 4기(4~7호)는 고대건축기술을 기초로 하여 복원하였고, 2기(2,9호)는 유구 위에 보호각을 설치하여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나머지 18기는 흙을 덮어 보존한 후 그 위에 주거지를 표시하였다. 또한 2기(2,7호)는 신석기시대의 생활모습을 연출하여 전시하였다.  

 

5.탐방일자 

2015.04.20(월)

 

6.글쓴이

김영도(010-8121-8041)

 

7.생생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