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섭(李廷燮)은 영조 때의 문신이다. <영조실록>과 <조선인물호보(朝鮮人物號譜)>에 의하면, 자는 계화(季和)이고 호는 저촌(樗村)이며 본관은 전주로 선조의 4대손인 임원군(林原君) 표(杓)의 아들이다. 문재(文才)로 이름이 나서 영조11년(1735)에 음보로 벼슬에 나가, 이듬해 세자 익찬이 되었다. 좌랑을 지냈으나 벼슬을 그만두었다. 재주와 식견을 인정받아 영조20년(1744)에 군자감정에 의망되었다. 영조42년(1766)에 북관 사람 윤붕거(尹鵬擧)를 승지로 임명한 것을 불평하여 물의를 일으키고 국정에 간여하여 사간 이헌경(李獻慶)을 움직였다고 하여 청금록에서 삭제되고 형문 끝에 장폐되었다. 문장에 능하고 호방했다.
세차고 크나큰 말에 내 시름 등재게 실어
주천(酒泉) 바다에 풍들이쳐 둥둥 띄어 두고라자
진실로 그러곳 할 양이면 자연 삭아지리라.
알았노라 알았노라 나는 벌써 알았노라.
인정(人情)은 토각(兎角)이요 세사(世事)는 우모(牛毛)로다.
어디서 망령(妄伶)엣 것은 오라 말라 하느니.
그는 왕가의 종친으로 문재(文才)를 인정받아 음보로 벼슬에 나갔으나 오래지 않아 그만 두었고, 정사에 대한 비판을 했다가 고문을 받아 죽었다. 첫 수는 술을 마셔 시름을 잊겠다는 뜻을 역동적 이미지로 표현했는데, 초장에서 힘세고 덩치 큰 말에 자신의 시름을 등에 우뚝 쌓이게 싣고 싶다고 했다. 성질은 호방한데 일은 잘 풀리지 않아서 시름이 많았던 모양이다. 중장에서 그 시름 실은 말을 주천 바다, 곧 술로 된 바다에 풍덩 들이쳐 둥둥 띄어 두고 싶다고 했다. 시름에 가득한 마음을 술을 마셔 씻어버리고 싶다는 역동적인 비유다. 여기서는 ‘주천 바다’와, ‘시름을 바다에 띄운다.’는 은유를 겹쳐서 쓰고 있다. 종장에서 시름을 술의 바다에 띄울 수 있다면 시름은 자연히 삭아질 것이라고 소망하였다. 둘째 수는 종친에 대한 대접이 섭섭하다는 마음을 읊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초장에서는 자신은 이미 알았다고 세 번씩 강조했는데, 그 내용인즉 중장에 나온다. 곧 인정은 세상에 본디 없는 것이요, 세상일은 쇠털같이 많다는 것이다. 인정을 느껴야 할 곳에 그것을 느낄 수 없어 삭막하고, 간단히 처리될 수 있는 문제인데도 번잡하게 괴롭히는 사정을 두고 이렇게 읊은 것이다. 인정은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정 또는 남을 동정하는 따뜻한 마음이지만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썼을 것이다. 토각(兎角)은 토끼의 뿔로 본디 세상에 없는 것을 강조해서 하는 말이고, 우모(牛毛)는 소의 털로 많고 많은 것을 말한다. 그가 벼슬길에 있지도 않으면서 국정에 간여했다고 유생 명부에서 제명되고 고문을 당한 끝에 죽었으니 종친에게 인정사정없는 왕실과 권력자를 두고 이런 말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자신을 오라마라 하는 무리들에게 망령엣 것들로 치부하는 호탕한 풍모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