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진의 시

김영도 2020. 8. 21. 14:47

임진(林晋, 1526-1587)은 명종,선조 때의 무신이다. <선조실록>과 <나주임씨세보(羅州林氏世譜)>에 의하면, 자는 희선(希善)이고 본관은 나주로 임제(林悌)의 아버지다. 21살(1546,명종1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법성포 만호, 영변부사, 창원방어사 등을 거쳐, 제주목사 겸 수륙군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44살에 전라우수사가 되어 흑산도 수적을 포획했고, 48살에 경상좌도병마사, 회령부사가 되었으나, 기첩(妓妾) 때문에 역마를 거느리느라 역졸을 침해한 사건으로 추고를 당하였다. 58살에 장흥부사, 오도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 청렴한 생활로 영변, 창원, 제주에 청정비(淸政碑)가 있다. 

 

 활 지어 팔에 걸고 칼 갈아 옆에 차고

 철옹성변(鐵瓮城邊)에 통개(筒箇) 베고 누웠으니

 보완다 보아라 소리에 잠 못 들어 하노라.

 

<동국여지승람> 영변 조에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약산(藥山)의 험함은 우리나라에서 으뜸인데, 층층으로 겹친 봉우리가 사면에 둘러 있는 모양이 마치 철옹(鐵瓮) 같다.”라는 기록이 있다. 영변의 험한 지형을 옛날부터 철옹성이라고 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 시조에 철옹성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으니 이 작품은 그가 영변부사로 있을 때 지은 것이라 하겠다. 또 평안도 맹산 조에 사방이 절벽으로 된 철옹성이 있다고 했는데, 이곳에 가서 지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시조는 무인의 활달한 기상과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를 근심하는 것을 표현하였다. 초장에는 활과 칼로 무장한 무사의 모습을 그려내어 무인의 기상을 보여준다. 중장에는 철옹성 가에서 활과 화살을 담은 동개를 베고 잠깐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묘사했는데, 변방의 무인이 국가를 방위하다가 고달픈 몸을 잠깐 쉬는 참이다. 그런데 이런 휴식 시간마저도 편히 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종장에 보면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시끄러운 군호소리 때문이라고 했다. 그 시끄러운 군호소리를 듣고 잠 못 이루면서, 아마도 국가의 안위는 생각하지 않고 조정의 세력 쟁탈에 혈안이 된 문신들의 정쟁을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그는 변방을 지키면서도 조정의 정쟁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