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정철의 시 2

김영도 2020. 8. 19. 22:45

 내 마음 베어 내어 저 달을 만들고자

 구만리(九萬里) 장천(長天)에 번듯이 걸려 있어

 고운 님 계신 곳에 가 비추어나 보리라.

 

 내 양자 남만 못한 줄 나도 잠깐 알건마는

 연지도 버려 있고 분때도 아니 미네.

 이렇고 괴실까 뜻은 전혀 아니 먹노라.

 

 송림(松林)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가지 꺾어내어 님 계신 데 보내고자

 님께서 보시온 후에 녹아진들 어이리.

 

 쓴 나물 데운 물이 고기도곤 맛이 있네.

 초옥(草屋) 좁은 줄이 긔 더욱 내 분이라.

 다만당 님 그린 탓으로 시름겨워 하노라.

 

 누(樓) 밖 푸른 머구 봉황(鳳凰)아 아니 온다.

 무심한 뙈기 달에 홀로 배회하는 뜻은

 언제나 봉황이 오면 놀아 볼까 하노라.

 

 내 한낱 산깁 적삼 빨고 다시 빨아

 되나된 볕에 말리고 다료이 다려

 나는 듯 날랜 어깨에 걸어두고 보소서.

 

이 시들은 고향에 돌아오거나 정치현실을 물러나서 임금 또는 님을 그리는 심정을 읊은 작품들이다. 첫 수는 자신의 마음을 달로 만들어 하늘에 걸어서 임금에게 비추겠다는 간절한 연군지정(戀君之情)을 표현한 것이고, 둘째 수는 자신의 인물이 못난 줄 스스로 알지마는 화장도 하지 않고 님의 사랑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하여 못난 여인에 자신을 견주어서 표현하였다. 다시 말해 자신은 재주가 다른 신하보다 못한 줄 알지만 단점을 고치고 꾸며서 임금의 사랑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뜻을 표현하여 진솔한 제 모습으로 충성을 다할 뿐이지 임금에게 듣기 좋은 말로 아부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강직함을 은근히 드러내었다. 셋째 수는 소나무에 내린 눈꽃을 꺾어서 임금에게 보내고 싶은 심정을 표현하였다. 그것은 또한 눈처럼 결백한 자신의 마음을 사랑하는 님에게 보이고 싶은 심정의 표현이다. 님이 자신의 결백을 안 다음에는 녹아 없어져도 좋다고 했으니 자신의 눈꽃 같은 결백을 주장한 것이다. 넷째 수는 전원에 돌아와 그 담백한 맛을 즐기고 있지마는 다만 님을 잊지 못해 마음은 시름에 차 있다고 하였다. 전원에서 안분지족(安分知足)을 누리려니 연군지정을 외면할 수가 없다는 은둔과 진출의 자기갈등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다섯째 수는 ‘서하당벽오가(棲霞堂碧梧歌)’다. 서하당은 김성원(金成遠)이 지은 집으로, 누각 앞에 심은 벽오동에 봉황은 오지 않고 조각달을 보며 홀로 서성거리면서 봉황이 오기를 기다린다고 하였는데, 이는 임금이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마음을 읊은 것이라고 할 것이다. 마지막 수는 님에게 바치는 자기의 정성을 표현한 것으로, 생사(生絲)로 짠 비단 적삼을 빨고 말리고 다려서 산뜻하게 마련했으니, 입어 보시고 나의 이 정성을 알아 달라고 하였다. 님에게 바치는 나의 알뜰한 사랑을 옷을 준비한 과정에 실어 보인 것이다. 물론 임은 그의 가사(歌辭) 작품에서와 같이 임금을 뜻한다.

 

 강호(江湖) 둥실 백구(白鷗)로다.

 우연히 뱉은 춤이 지거구나 백구(白鷗)등에

 백구(白鷗)야 성내지 마라 세상 더러하노라.

 

 물 아래 그림자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

 저 중아 게 서거라 네 가는 데 물어보자.

 손으로 흰 구름 가리키고 말 아니코 가더라.

 

 잘 새는 날아들고 새 달은 돋아온다.

 외나무다리에 혼자 가는 저 중아.

 네 절이 얼마나 하건대 먼 북소리 들리나니.

 

 신라(新羅) 팔백년(八百年)의 높도록 무은 탑(塔)을

 천근(千斤) 든 쇠북소리 치도록 울릴시고

 들 건너 적막산정(寂寞山亭)에 모경(暮景) 도울 뿐이라.

 

 꽃은 밤비에 피고 빚은 술 다 익거다.

 거문고 가진 벗이 달 함께 오마터니

 아이야 모첨(茅簷)에 달 올랐다 벗님 오나 보아라.

 

이 시들은 강호에서 자연을 벗하여 노니는 강호한정(江湖閑情)의 경지를 읊은 것이다. 현실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있지만 점점 자연의 무아경에 몰입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첫 수는 강호자연 속에 노니는 흰 갈매기를 등장시키고 세상을 더러워하여 뱉은 침이 흰 갈매기의 등에 떨어졌다고 하여, 강호에 돌아와 흰 갈매기를 벗했으면서도 정치현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내 보이고 있다. 둘째 수는 다리를 건너가는 중을 등장시켜 그가 어디로 가는지를 묻고 있다. 중은 말없이 흰 구름을 가리킬 뿐인데 이는 청산에서 말없이 살아감을 나타낸 것으로 자신도 자연과 일체가 되어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셋째 수에도 저물녘에 절로 돌아가는 중이 나온다. 중에게 절이 얼마나 머냐고 묻지만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고 멀리 절에서 들리는 북소리만이 여운으로 남는다. 욕심 없이 자연 속으로 돌아가는 중처럼 자신도 강호자연의 운치를 즐기면서 살겠다는 뜻이지 중이 절로 돌아가 치열한 정진을 한다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넷째 수에는 유구한 신라의 역사를 높은 탑으로 형상화시키고 거기에 조응하는 웅장한 종소리를 대응시켰는데, 이렇게 시각화된 시간과 청각화된 공간 이미지를 동원하여 강호자연의 풍경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유구하고 웅장한 느낌을 붙잡아 내었다. 적막한 산정(山亭)에서 그는 탑과 종소리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큰 울림에 경이를 느끼는 것이다. 마지막 수는 조용히 전원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표현하였는데, 밤비 맞고 피어난 꽃과 다 익어서 맛 좋은 냄새를 풍기는 술, 그리고 달이 뜨면 거문고를 메고 오겠다던 벗을 기다리는 마음 등이 어울려서 전원생활의 풍류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를 불러 처마 끝에 달이 돋았으니 기다리던 벗이 거문고를 메고 오는지 묻고 있는 데서 강호의 흥취에 젖어드는 것이다. 

 

 새원 원주(院主) 되어 시비(柴扉)를 고쳐 닫고

 유수청산(流水靑山)을 벗 삼아 던졌노라.

 아이야 벽제(碧蹄)에 손이라커든 날 나갔다 하구려.

 

 쉰 술 걸러내어 맵도록 먹어보세.

 쓴 나물 데워내어 달도록 씹어보세.

 굽격지 보요 박은 잔징이 무디도록 다녀보세.

 

 유령(劉伶)은 언제 사람고 진(晋) 적의 고사(高士)로다.

 계함(季涵)은 긔 뉘러니 당대(當代)에 광생(狂生)이라.

 두어라 고사광생(高士狂生)을 물어 무삼하리.

 

 재 너머 성권농(成勸農) 집에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운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타고

 아이야 네 권농(勸農) 계시냐 정좌수(鄭座首) 왔다 하여라.

 

 청산(靑山)의 부연 빗발 긔 어찌 날 속이는

 되롱 갓망 누역아 너는 어찌 날 속이는

 엊그제 비단옷 벗으니 덞을 것이 없어라.

 

 청천(靑天) 구름 밖에 높이 뜬 학(鶴)이러니

 인간이 좋더냐 무엇 하러 내려온다.

 장깃이 다 떨어지도록 날아갈 줄 모르는가.

 

그는 술을 좋아하고 풍류를 즐겼다는 것으로 보아 자유분방함을 사랑한 낭만적인 측면을 지닌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가 효성이 지극하고 ‘훈민가’를 지었으며 청렴 강직한 성품을 지녔으면서도 근엄한 도학자적인 인물이기보다는 흥취를 즐기고 자유를 사랑하는 휴머니스트의 측면이 더 강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여기에는 그런 정감적이고 인간적인 측면이 노출된 시들을 모았다. 첫 수는 그가 35살과 38살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을 당해서 경기도 고양 신원에서 여묘살이를 했는데 그때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신원의 원주가 되었다고 했지만 그가 역원(驛院)의 원주벼슬을 했던 일은 없으므로 신원에 머물면서 자신을 원주에 가탁해 본 것이다. 시묘살이로 세상과 인연을 끊고 멀리 한강 하류와 구릉을 바라보면서 벽제(碧蹄)에서 찾아온 손님마저 없다고 따돌리고 고요히 외로움에 침잠해 있는 것이다. 둘째 수는 그의 파격적인 흥취가 드러나는 작품으로 쉰 술을 걸러서 실컷 먹고 쓴 나물도 단맛이 나도록 씹자고 하여 남들이 싫어하는 음식이라도 달게 먹으면서 그 역설적 재미를 즐기고, 굽에다가 잔 징을 촘촘히 박은 나막신이 다 닳도록 다녀보자고 하여 억지스런 파격적 행동을 즐기는 흥취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셋째 수는 진(晋)나라 때 술을 즐겼던 유령(劉伶)과 자신을 대비하여 마음껏 술을 즐기면서 미친 사람처럼 살겠다는 자신의 숨은 욕구를 드러내 보인 것이다. 넷째 수는 극적인 구성과 능란하고 힘 있는 언어기교, 그리고 넉넉하고 전원적인 흥취가 조화를 이룬 수작이라고 할 만하다. 초장에는 ‘재 너머’라는 거리감과 ‘성권농’이라는 얕은 지위를 끌어와 여유롭고도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술과 친구를 찾아가려는 준비단계를 설정해 두었다. 중장은 누운 소를 끌어내어 안장을 놓고 눌러 타고서 재를 넘어가는 과정을 제시하여 파격적이고도 멋스러운 광경을 보여준다. 종장에서 극적 만남을 이루었는데, 간접적인 화법으로 친구를 불러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것으로 옛사람들의 여유롭고 풍류스런 광경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마도 성권농과 정좌수는 친구였던 성혼과 자신을 시골 양반에 어울리는 얕은 직함으로 바꾼 것이리라. 다섯째 수는 전원에서 농민 옆으로 돌아가 실감이 잘 나지는 않지만 그들의 가난함을 편안히 여기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청산의 뿌연 빗발도 벼슬아치였던 그에게 거짓말 같고, 백성의 초라한 차림새도 비단옷을 벗은 자신에게 어쩐지 잘 맞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더 더러워질 것도 없는 편안한 백성의 자리에 함께 와 있는 것이다. 마지막 수에는 자신을 신선으로 여겼던 이백(李白)의 자부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자신을 구름 밖에 뜬 학이라고 하고 인간이 좋아서 내려온 학 곧 신선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긴 깃이 다 떨어지도록 신선세계로 돌아갈 줄 모르고 인간 세상에 취해 사느냐고 하였다. 자신이 남다른 풍격을 지니고 세상을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자아관념이라 하겠다.

 

 심의산 세네 바퀴 감돌아 휘돌아 들어

 오뉴월 낫계즉만 살얼음 집힌 위에 진서리 섞어치고 자취눈 지었거늘 보았는다. 님아 님아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님이 짐작하소서.

 

 한 잔(盞)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 놓고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주리어 메어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에 만인(萬人)이 울어 예나 어욱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白楊)숲에 가기곳 가면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 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파람 불 제 뉘우친들 어쩌리.

 

끝으로 그의 장시조를 살펴보자. 첫 수는 중장만 규격을 벗어났고, 둘째 수는 초장과 중장이 규격에서 벗어났다. 후대에 엇시조 사설시조로 확장 발전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삼장육구(三章六句)의 정형 속에서는 다할 수 없는 산문적 자유를 보여준다. 정형을 깸으로써 파격을 보여준 것은 앞에서 본 그의 넘치는 흥취를 보고 짐작했을 터이다. 첫 수는 자신의 진실을 님이 믿어달라는 간절한 호소인데, 불가능한 상황을 늘어놓고 그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하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심의산은 불교에서 말하는 수미산(須彌山) 또는 시메산골(두메산골)을 뜻하는 말이고, 거기 오뉴월 한낮에 눈서리 온다는 말을 믿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많은 사람이 온갖 말로 자신을 헐뜯어도 자신의 결백을 믿어달라는 것이다. 선조 임금은 “그 마음이 바르고 그 행동이 방정하며 오직 말이 곧아서 시세에 용납되지 않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따름이니 그 임무를 맡음에는 충성과 절의를 다하여 초목도 그의 이름을 알 것이다.”라고 하여 그의 청렴결백과 충성을 인정했다. 둘째 수는 장진주사(將進酒辭)다. 술을 권하는 노래로 이백(李白)의 ‘장진주(將進酒)’와 두보(杜甫)의 ‘시마백부행(緦麻百夫行)’이라는 한시를 모방한, 인생의 허무함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자는 내용이다. 초장은 반복적으로 술을 먹자고 권하면서 꽃을 꺾어 계산해 가면서 끝없이 먹자고 낭만적인 호기를 부리고 있다. 중장에는 술을 먹는 이유를 말했는데, 죽은 후에는 지게송장이 되거나 호화로운 상여에 만인이 울면서 가거나 간에 한번 죽고 나면 수풀 우거지고 으스스하게 처량한 묘지에 묻힐 것이니 누가 한 잔 권하겠느냐는 것이다. 종장에서 그런 무덤 우에 원숭이가 휘파람을 부는 소름끼치는 날이면 더욱 한 잔 술이 생각나지 않겠느냐고 인생의 처절하도록 허망함을 한껏 강조하였다. 이렇게 허망한 인생이니 살아서 실껏 술이나 마시자고 하였다. 너무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세계관을 제시하면서 술을 권하고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