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안서우의 시

김영도 2020. 7. 31. 16:58

안서우(安瑞羽, 1664-1735)는 숙종경종영조 때의 문신이다. 실록과 <성호문집(星湖文集)>에 의하면, 그의 자는 봉거(鳳擧)이고 호는 양기옹(兩棄翁)이며 본관은 광주(廣州)로 안정복(安鼎福)의 조부다. 28살에 생원이 되고 30살에 성균시에 뽑혔으며, 31(1694, 숙종20)에 문과에 급제했다. 성묘종사(聖廟從祀)의 의론에 참여했기 때문에 승문원에 뽑히지 못했다. 55(1718, 숙종44)에 태안군수가 되어 안흥진 방비의 개선을 상소했다. 63(1726, 영조2)에 울산부사로 있다가 전정(田政)을 잘못했다는 암행어사의 고발로 물러났다. 그 뒤 무주에 은퇴하여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내 마음 접어서 남의 마음 생각하니

나 싫으면 남 싫고 남 좋으면 나 좋으니

모르미 기소불념(己所不念)을 물시어인(勿施於人)하리라.

 

 

문장(文章)을 하자 하니 인생식자우환시(人生識字憂患始)요

공맹(孔孟)을 배우려 하니 도약등천불가급(道若登天不可及)이로다.

이내 몸 쓸데없으니 성대농포(聖代農圃) 되오리라.

 

 

청산(靑山)은 무슨 일로 무지(無知)한 나 같으며

녹수(綠水)는 어찌하여 무심(無心)한 나 같으뇨.

무지(無知)타 웃지 마라 요산요수(樂山樂水)할까 하노라.

 

 

홍진(紅塵)에 절교(絶交)하고 백운(白雲)으로 위우(爲友)하여

녹수(綠水) 청산(靑山)에 시름없이 늙어가니

이 중에 무한지락(無限至樂)을 헌사할까 두려워라.

 

 

그의 시조는 유원12(楡院十二曲)’ 13수와 산수 자연을 애호하는 시조 5, 모두 18수가 그의 문집 <양기재산고(兩棄齋散稿)>에 전한다. 모두 전원에 살며 지은 작품으로 짐작된다. 위에 인용한 네 수는 각각 유원12의 서장(序章)에서 3장까지다. 첫 수는 자신의 생활철학을 밝힌 것으로 <논어>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양심 내지 도덕률에 따라 살겠다는 언명이다. 내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이해하면 나와 남은 한가지이니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끼치지 않겠다는 양심선언으로 서장을 삼았다. 이는 세속에서 양심대로 살기는 어려우니 전원에서 자연을 사랑하며 양심대로 살겠다는 생각을 밝힌 것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유원12은 거의 자연애호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수는 유원12 1장인데, 자신이 전원에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을 밝히고 있다. 문장으로 살아가려니 문장이 식자우환의 시발점이요, 성인의 가르침을 배우려 하니 그 진리가 하늘같아서 오를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문장을 갈고닦고 경전을 연구하는 선비의 길에서 봉착한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농부가 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문 구절을 그대로 가져다 쓴 점은 그가 한문이 몸에 밴 인물임을 드러낸 것이고, 시조의 한문 수용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지만,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리지 못한 작가의 한계점이다. 셋째 수는 청산과 녹수 곧 산과 물이 자신의 무지하고 무심한 경지와 같다면서 스스로 자연과 동화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다. 물론 무지하고 무심하다는 것은 세상사에 그렇다는 것이므로 자연 속에 살며 그것을 즐기는 요산요수의 경지에서는 무지가 웃음거리가 될 턱이 없다. 넷째 수는 홍진 세상과 인연을 끊어 버리고 흰 구름과 벗을 했다는 말은 벼슬길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무주 산골짜기의 산수를 즐기며 전원생활에 만족한다는 것이고, 이런 자족한 생활을 남이 소문낼까 두려울 정도라는 것이다.

 

 

경전(耕田)하여 조석(朝夕)하고 조수(釣水)하여 반찬(飯餐)하며

장요(長腰)에 하겸(荷鎌)하고 심산(深山)에 채초(採樵)하니

내 생애(生涯) 이뿐이라 뉘라서 다시 알리.

 

 

영산(嶺山)에 백운기(白雲起)하니 나는 보매 즐거워라.

강중(江中) 백구비(白鷗飛)하니 나는 보매 반가워라.

즐기며 반가워하거니 내 벗인가 하노라.

 

 

유정(有情)코 무심(無心)할손 아마도 풍진붕우(風塵朋友)

무심(無心)코 유정(有情)할손 아마도 강호구로(江湖鷗鷺)

이제야 작비금시(昨非今是)를 깨달은가 하노라.

 

 

인간(人間)에 풍우다(風雨多)하니 무슨 일 머무느뇨.

물외(物外)에 연하족(烟霞足)하니 무슨 일 아니 가리.

이제는 가려 정하니 일흥(逸興)겨워 하노라.

 

 

첫 수는 유원12 중 제4장으로 전원에서 농민으로 살아가는 생활을 쓴 것이며, 둘째 수는 제7장으로 구름과 갈매기를 벗하며 자연 속에 사는 즐거움을 읊은 것이다. 셋째 수는 제8장으로 풍진 세상의 벗보다는 자연이 더욱 좋다는 깨우침을 적은 것이고, 넷째 수는 제11장으로 인간 번뇌를 떠나 물외의 자연 속으로 돌아가는 흥취를 표현한 것이다. 요컨대 자연에 동화되어 전원에서 사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다.

 

첫 수의 초장은 농사지어서 끼니를 해결하고 낚시질해서 반찬을 마련하는 전원에서의 생계를 늘어놓은 것이고, 중장은 허리춤에 호미를 차고 나가 김을 매고 또 깊은 산에 들어가 땔나무를 장만하는 일상을 말한 것이다. 전원생활도 생계를 해결해야 가능한 만큼 그 구체적인 생활 내용을 이렇게 나열함으로써 생계대책을 분명하게 밝혔다. 둘째 수의 초장과 중장에서 고갯마루에 솟은 흰 구름과 강 위에 나는 흰 갈매기를 보며 그것들이 벼슬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온 자신의 모습과 일치하기에 즐겁고 반갑다는 것이다. 본디 흰 구름과 흰 갈매기는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자연 속에 사는 삶을 상징한다. 그는 자연에 돌아와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셋째 수에서는 세속에서 사귀었던 벗은 겉으론 유정한 것 같아도 속으론 무심한 벗이며, 강호의 갈매기와 해오라기는 겉으론 무심하지만 두고 보면 정겨운 것이니 세속의 벗을 믿었던 지난날의 교유는 잘못된 것이고 자연의 벗을 발견한 지금이야말로 참으로 옳은 길이라며 자신이 자연에 돌아와 새로운 깨우침을 얻었다고 했다. 마지막 수는 다시금 세속에 미련이 없음을 강조하는데, 살기 어려운 세속에 왜 머무를 것이며, 풍광 아름다운 자연에 무엇 때문에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스스로를 채근한다. 그리하여 전원에 돌아가기로 마음을 정하니 새삼 흥겨워진다는 것이다.

 

 

옥봉(玉峯)에 나는 구름 가지 말고 게 있거라.

네 비록 무심(無心)한들 나는 보매 유정(有情)하다.

구름도 들음이 있던지 장요영상(長繞嶺上)하나다.

 

 

적성(赤城)에 단하기(丹霞起)하니 천대(天臺)는 어디메오.

향로(香爐)에 자연생(紫烟生)하니 여산(廬山)이 여기로다.

이 중에 무한선경(無限仙景)이 내 분(分)인가 하노라.

 

 

집이 집이 아냐 연하(烟霞)야 내 집이요.

벗이 벗이 아냐 풍월(風月)이야 내 벗이되

집 있고 벗 얻은 후니 만사무심(萬事無心) 하여라.

 

 

청산(靑山)으로 울을 삼고 녹수(綠水)로 띠를 삼아

벽봉창파(碧峰蒼波)에 시름없이 왕래(往來)하니

이 중에 채산조수(採山釣水)하여 기갈(飢渴)이나 면(免)할까.

 

 

탐(貪)이라 탐(貪)이라 한들 산수탐(山水貪)이 탐(貪)이 되며

병(病)이라 병(病)이라 한들 연하병(烟霞病)이 병(病)이 되랴.

아마도 이 탐병(貪病) 계우니 못 고칠까 하노라.

 

 

이 시조들은 유원12에 들지 않은 작품으로 그가 무주에 은둔한 만년에 지은 것이다. 첫 수는 구름과 동화된 무심한 경지를 읊은 것이고, 둘째 수는 무주 주변 산천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다. 셋째 수는 자연 속에 지내는 즐거움을 드러낸 것이고, 넷째 수에는 전원생활의 청빈함을 읊었으며, 마지막 수에는 산수자연을 사랑하는 자신의 병을 토로했다.

 

첫 수의 초장에는 명령법을 구사하여 단호한 어조를 드러내지만, 중장에서 그것은 산 위에 걸린 구름을 정겨워 해서 부르는 소리다. 종장에서 무심한 구름마저 유정하게 산 위에 둘러있다고 해서, 자연물에 정감을 투사하여 주객일체가 된 경지를 보여준다. 둘째 수의 초중장은 문답과 대구의 방법으로 무주 주변의 경치 좋은 곳을 나열한 것이다. 적성이나 천대, 향로봉 등은 무주 인근의 산이고, 이들이 중국의 여산의 절경과 맞먹을 만하다는 자랑이다. 그런 절경에 붉은 노을과 안개가 휘감았으니 신선경이 따로 없고 이것이 바로 자신이 누리는 분복(分福)이라는 말이다. 셋째 수는 집이 집이 아니고, 벗이 벗이 아니라고 하여 고정된 생각을 깨뜨리는 발언으로 자신의 탈속적 경지를 강조한다. 노을과 안개가 자신의 집이고, 바람과 달이 자신의 벗이라면서 자연과 더불어 무심히 사는 생활을 노래했다. 그러나 만사에 무심하다는 말은 결국 세속적인 일에 무심하다는 뜻이고, 그런 언급을 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세상일을 의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진정한 자연 귀의의 심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넷째 수는 초중장에서 자연 속에서 자유로이 사는 삶을 제시했지만, 종장에서는 자연 속의 삶이 기갈을 면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자연 속의 삶은 세속으로부터 자유를 뜻하지만 그것은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지극히 가난한 삶임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수는 탐욕과 병을 제시하고 거기에 산수와 연하를 연결하여 자연을 사랑하는 탐욕과 병은 나쁜 것이 아니며, 자신은 이 탐욕과 병을 고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자연에 대한 사랑을 결코 고치지 않겠다는 반어적 다짐이다.